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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설수설/허승호]정규직화의 딜레마

입력 | 2006-08-09 20:57:00


“최초 고용 후 2년 동안은 자유롭게 해고할 수 있도록 하겠다. 일단 사람을 채용해 써보고 판단하라.” 올 1월 프랑스 정부가 내놓은 노동법 개정안의 최초고용계약(CPE) 조항이다. 법안이 발표되자 대학생과 노동계가 반발해 3월에는 하루 100만 명 이상이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헌법 재판에서 CPE 조항은 합헌 결정을 받았지만 프랑스 정부는 거센 저항에 굴복해 결국 개정안을 거둬들이고 말았다.

▷프랑스 정부가 이런 법을 만들려고 한 것은 실업이 워낙 심각하기 때문이다. 프랑스인들은 일단 일자리만 구하면 ‘천국’을 만난다. 주당 35시간만 일하면 되고, 종신고용이 사실상 보장되며, 퇴직 후 연금도 넉넉하다. 하지만 기업들은 해고가 거의 불가능한 데다 고용에 따른 높은 사회보장세를 물어야 하므로 채용 자체를 꺼린다. 10%를 넘는 실업률이 그 결과다. 특히 신규채용 대상인 청년들의 실업률은 23%에 이른다.

▷우리 정부와 여당은 공공부문 비정규직 가운데 5만4000여 명을 정규직으로 전환하기로 했다. 한마디로 해고하지 말라는 것이다. 외환위기 이후 급증한 비정규직이 겪었을 불안과 차별의 고통을 상상하면 공감도 간다. 그러나 좋은 의도가 꼭 좋은 결과를 낳는 것은 아니다. 이럴 경우 ‘고용의 총량’이 줄어든다는 것이 경제학의 냉정한 가르침이다. 정규직 전환자들은 혜택을 누리는 반면, 비정규직조차 구하지 못한 더 힘든 사람들의 일 할 기회는 더 적어질 우려가 높다. 프랑스가 보여 주듯이.

▷고용을 늘리려면 해고와 재취업이 동시에 쉬워져야 한다. 그게 노동시장 유연화, 공공부문 효율성 제고 등 정부가 외쳐 온 경제혁신 방향과도 일치한다. 더 큰 문제는 정부가 정규직 전환을 발표하면서 “정부가 모범을 보이는 것”이라고 강조했다는 사실이다. 민간기업도 비슷한 조치를 취하라는 압력이지만, 무작정 그러면 기업 경쟁력 약화, 투자 및 고용 여력 위축, 경제성장 둔화, 사회적 약자들의 고통 증대로 이어질 뿐이다.

허승호 논설위원 tiger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