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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갈피 속의 오늘]1940년 日총독부, 동아일보 강제폐간

입력 | 2006-08-10 03:03:00


“일제강점기 말 한글로 발행되던 신문이 폐간되던 때 조선 사람들의 심회는 어떠하였던가. 유독 그 신문사의 사람들만이 아니요, 온 조선 사람이 실감한 어떤 종말(終末)의 기분이었던 것이다.”

한 문학평론가는 1940년 8월 10일 일본총독부에 의한 동아일보의 강제폐간 당시 분위기를 이렇게 전했다. 일상생활에서도 ‘국어(일본어) 상용’을 강요하던 일제는 총독부 기관지 매일신보만 남겨 두고 한글로 발행되던 동아일보, 조선일보를 폐간시켰다.

당시 총독부는 동아일보를 폐간시키기 위해 ‘언문신문통제안(諺文新聞統制案)’이라는 극비문서를 만들었다. 이 문서에는 신문을 폐간시키기 위한 갖가지 방안, 비용, 후속대책까지 꼼꼼히 기록돼 있다. 겉으로는 전쟁 준비에 따른 ‘용지난(用紙難)’을 이유로 들었지만, 이 문서에는 일제가 조선어 신문을 폐간시킨 진심이 드러나 있다.

“시국의 무거운 압력에 의해 암류(暗流)하고 있는 민족의식이 동아일보, 조선일보의 존재를 기반으로 하여 흘러넘쳐(橫溢) 언젠가는 매일신문을 복멸(覆滅)하게 하는 지경에 이를 수도 있다. 동아일보 조선일보를 통제하는 것은 불량지를 정리하여 민족의식을 베어 버림과 동시에 매일신보의 발전을 가져와 민심의 선도에 힘쓰게 하는 결과가 된다.”

총독부는 사실상 강제 폐간이면서도 조선인들의 여론을 의식해 ‘자진폐간’을 종용했다. 동아일보에 대해 1940년 2월 11일 일본의 기원절(건국기념일)까지 폐간하라고 지침을 내렸지만, 동아일보는 6개월 이상 버티며 저항했다. 동아일보 고문인 고하 송진우는 일본 도쿄(東京)에 가서 일본 정계에 조선총독부의 부당성을 호소하기도 했다.

결국 일제는 저항하는 동아일보의 간부들을 구속시켰다. 혐의는 ‘경제통제령을 위반했으며, 비밀결사를 조직했다’는 것. 종로경찰서는 “동아일보 간부들의 회식은 비밀결사 조직을 모의한 것이며, 송진우 명의의 은행자금은 독립운동자금이고, 전국 800여 지사 지국을 통해 독립자금을 모집해 상하이임시정부로 보냈다”는 혐의로 백관수 사장을 구속시켰다.

백 사장은 구속된 지 열흘이 넘도록 폐간계 서명날인을 끝까지 거부했다. 일경은 결국 발행인 겸 편집인을 와병 중이던 임정엽 상무로 바꾸게 한 뒤 ‘자진폐간하겠다’는 문서에 서명하게 했다.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