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계나 구조물을 자동으로 설계할 수 있는 ‘똑똑한’ 기술을 개발 중인 서울대 김윤영 교수. 손에 든 것은 자동설계기술로 만든 기계장치.
많은 다리가 아치형이다. 아치형은 아래로 누르는 힘을 옆으로 분산시킨다. 프랑스 파리의 개선문이나 한국 석굴암의 천장에서도 아치형이 발견된다. 인류의 조상들은 오랜 세월 여러 건축물을 설계하면서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쳐 아치형이 무게를 잘 견딘다는 사실을 알아냈을 것이다.
그러나 경험에 의존한 설계로는 현대의 기술발달 속도를 따라가기 벅차다. 우리 연구팀은 컴퓨터에 원하는 성능을 입력하기만 하면 가장 적합한 형태를 시행착오 없이 단시간 내에 찾아 주는 인공지능 기법인 ‘자동설계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예를 들어 다리의 형태를 결정하는 자동설계기술을 개발하려면 ‘다리의 입장’이 돼 주변을 꼼꼼히 살펴본다. 재료의 단단한 정도, 지지대의 높이, 기압 등 다리에 영향을 줄 수 있는 각종 물리적 요소들을 파악하는 것이다. 이를 바탕으로 컴퓨터 프로그램을 고안한다.
몇 년 전 미국의 한 대학에서 일정량의 스파게티 면과 풀만으로 다리를 만드는 이색 대회가 열린 적이 있다. 가장 튼튼한 형태를 찾아내는 팀이 이기는 것. 참가한 학생들은 갖가지 형태의 다리를 만들고 부수기를 수차례 반복했다.
우리는 자체 개발한 다리 자동설계 프로그램에 대회 조건을 입력해 봤다. 수십 분 만에 아치형 다리가 정답으로 나왔다. 실제로 그 대회 우승팀이 만든 다리도 아치형이었다.
쏟아져 나오는 첨단기술 제품을 그때그때 시장에 내놓으려면 설계 속도가 관건이다. 현재 우리 연구팀은 휴대전화의 초소형 스피커, 미세한 움직임도 가능한 로봇 팔 등을 기존보다 몇 배나 빠르게 설계할 수 있는 복잡한 자동설계기술까지 개발 중이다.
여기에는 다양한 분야의 지식이 필수. 스피커를 설계하려면 음향은 기본이고 기계나 전기 분야도 잘 알아야 한다. 로봇 팔을 설계하려면 기계공학뿐 아니라 관절이 움직이는 원리도 꿰고 있어야 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우리 연구원들은 자동차공학, 전자공학, 물리학, 음향학 등 여러 분야의 지식을 섭렵해야 한다. 각 분야의 전문가들과 막힘없이 대화할 수 있을 정도로 말이다. 처음에는 용어들이 낯설어 어려움을 겪기도 한다.
오늘도 우리는 설계할 구조물이나 기계의 눈으로 주변을 뚫어져라 관찰한다. 경험 많은 장인들이 많은 시행착오로도 찾아내지 못했던 설계의 핵심 요소를 간파하기 위해서 말이다.
김윤영 서울대 기계항공공학부 교수
yykim@sn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