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산 항
중국 상하이(上海) 앞바다로 내뻗은 총연장 32.5km의 둥하이(東海)대교를 건너자 양산(洋山) 항이 웅장한 모습을 드러냈다.
선석(배를 대는 곳)에서는 화물을 가득 실은 컨테이너선이 들어선 가운데 쉴 새 없이 하역작업이 벌어지고 있었다.
“8대의 크레인이 동시에 작업을 벌여 컨테이너(길이 20피트짜리 기준) 2500개를 처리하는 데 5시간밖에 안 걸립니다. 시간이 생명인 해운업체들이 좋아할 수밖에 없죠. 부산항이라면 같은 물량을 처리하는 데 12시간은 걸릴 겁니다.”
현지 항만 운영회사 관계자의 목소리에는 자신감이 넘쳤다.
지난해 12월 개항한 양산 항은 동북아시아 ‘물류 패권’을 노리는 중국 정부의 야심작. 상하이 앞바다 샤오양산 섬의 돌산을 폭파해 바다를 메워 만들었다.
기존 상하이 항은 얕은 수심 때문에 큰 배가 들어오지 못했다. 이 때문에 북미나 유럽으로 나가는 대규모 화물은 부산, 싱가포르, 홍콩 항까지 작은 배로 옮긴 후 다시 큰 배에 옮겨 실어야 했다. 들어오는 화물도 마찬가지였다.
중국의 환적(換積)화물이 부산항 등 인접 항구를 먹여 살린 셈이다.
실제로 지난해 부산항이 처리한 컨테이너 1184만 개 가운데 44%는 환적화물이었고 이 중 절반이 중국 화물이었다. 그러나 양산 항이 개항하자 상황은 달라졌다.
1단계 5개 선석만으로 올해 상반기(1∼6월)에 컨테이너 126만5000개를 처리했다. 개장 첫해에 연간 적정 처리능력 250만 개를 초과할 기세다.
반면 올해 상반기 부산항에서 처리한 환적화물은 컨테이너 252만7000개.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0.5% 줄어 사상 첫 감소세를 보였다.
전체 컨테이너 처리 실적도 573만5000개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0.8% 증가하는 데 그쳤다. 이는 최근 10년 사이에 가장 낮은 증가율이다.
올해 1월 3개 선석(1단계)을 연 부산신항(新港)은 부산항에서 처리하던 일감을 가져왔는데도 6월까지 4만4936개의 컨테이너를 처리하는 데 그쳐 양산항의 1.8% 수준에 머물렀다.
양산 항 관계자는 “2020년까지 추가로 47개 선석을 만들어 연간 컨테이너 3000만 개 처리 능력을 갖출 계획”이라고 말했다.
한국의 ‘동북아 물류 허브’ 전략에 암초가 늘어선 셈이다.
홍콩에서 만난 세계적인 항만운영업체 HPH의 고위 관계자는 “항만이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자체 물동량을 창출해야 하는데 한국은 정부정책 실패와 노조 문제로 주요 기업의 생산기지가 해외로 빠져나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상하이=배극인 기자 bae2150@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