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작전통제권 논란에서 중요한 부분이 하나 빠져 있다. 작전권을 돌려받게 되면 한미연합사령부가 해체되고, 시간문제일 뿐 주한미군도 대부분 떠나게 될 텐데 미군 철수 후 우리 사회에서의 군(軍)의 위치에 관한 논의가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다.
군은 아마 크게 달라질 것이다. 국가 안보를 혼자 떠맡게 되면 그만큼 영향력도 커진다. 더욱이 국방중기계획에 따라 2020년까지 621조 원이라는 천문학적 국방비를 쏟아 붓게 돼 있다. 지금도 병력에선 세계 6위인데 첨단 무기와 장비까지 갖추게 되면 군은 전혀 다른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올 것이다.
이렇게 되면 군에 대한 문민통제가 새삼 중요한 문제로 등장할 가능성이 높다. 정치적 격변기마다 군의 동향에 촉각을 곤두세워야 했던 불행한 과거가 되살아날 수 있어서다. 먼 장래의 일도 아니다. 3∼5년 후면 닥칠 일이다. 작전권 환수(단독 행사)에 좀 더 신중해야 할 또 다른 이유다. 자칫하면 힘들여 이뤄 낸 민주주의와 정치 발전까지도 영향을 받을 수 있다.
우리의 근대화는 물론 민주화까지도 미군 주둔에 힘입은 바 크다. 미군이 반세기가 넘도록 남북 간에 직접적, 우발적 충돌이 일어나지 않도록 완충지대(buffer zone) 역할을 해 줬기에 민주화의 싹을 틔울 수 있었다. 그 바탕에는 미국식 민주주의를 한국에 이식하고자 했던 미국의 소망이 깔려 있다. 좌파는 그 선의(善意)마저도 제국주의의 야욕으로 보지만 억지다. 이는 미국인 자신들이 주한미군을 어떻게 봤는지를 되짚어보면 알 수 있다.
미국은 1970년대 이후 주한미군을 대북 억지력 유지와 함께 한국의 민주화를 북돋우고 확대하는 중요한 수단으로 보았다. 1971년 6월 미 하원 아시아태평양소위원회에서 로버트 스칼라피노 교수는 “미국의 대한(對韓) 안보 공약이 지켜지지 않는다면 우리가 작동할 수 있도록 도와 줘야 할 한국의 정치적 개방성은 크게 희생될 것”이라고 증언한 바 있다. 한국의 비약적인 경제 성장과 민주화는 미국에도 주한미군의 존재 가치를 확인시켜 주는 성취였던 것이다.
물론 주한미군에 대한 이런 인식은 1980년 5월 18일 광주민주화운동을 계기로 흔들린다. 한국군의 무력 진압을 미국이 묵인했다는 주장이 제기되면서 한국에선 미군 철수운동의 불길이 댕겨지고, 미국에선 분출하는 한국의 민족주의에 대한 우려가 번진다. 그럼에도 긴 시간의 흐름에서 보면 주한미군이 한국의 민주화에 기여했음은 부인하기 어렵다.
이런 주한미군이 빠져나간다면 상대적으로 우리 군의 역할이 커질 수밖에 없다. 남북관계에 획기적 진전이 없는 상태에서 북이 핵과 미사일 개발을 계속하는데 달리 기댈 데가 있겠는가. 북의 선군(先軍)이 남의 선군을 부르는 꼴이다.
이런 상황이 오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교역규모 세계 11위를 자랑하는 대한민국에서 다시 군을 의식하며 살아 갈 수는 없는 일이다. 하지만 기우(杞憂)로만 돌릴 수 없는 아픈 과거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따지고 보면 우리의 ‘민주화’라는 것도 군의 영향력에서 벗어나기 위한 저항의 역사였다. 정치적으로는 군사독재 체제를 해체하고, 사회 문화적으로는 우리의 의식과 행태 속에 남아있던 군사문화의 잔재를 씻어 내기 위한 과정의 연속이었다.
그 대열의 끝자락에라도 섰음을 훈장처럼 내세우는 노무현 대통령과 주변 386들이 암울했던 그 시절을 다시 불러낸다면 아이러니다. 물론 그들도 그 위험성을 모르지는 않는 듯하다. 정권 출범 이래 국방부의 주요 보직을 현역 장교 대신 민간인으로 채우더니 최근에는 민간인 출신 국방장관 기용설까지 나왔다. 이는 문민통제의 기틀을 미리 다져 놓겠다는 뜻으로 읽힌다.
그 정도로 충분할까. ‘지키는 자는 누가 지킬 것인가’ 하는 딜레마는 2500년 전 플라톤의 ‘국가론’에서 다뤄졌을 만큼 인류의 오랜 숙제 중 하나다. 보수주의의 원조 격인 에드먼드 버크는 “훈련된 실체로서의 군대는 그 본질상 자유에 위협이 된다”고 말했다.(온만금, 군대사회학, 2006) 작전권 환수 문제에 좀 더 신중히 접근해야 할 진짜 절박한 이유다.
우리 사회가 군의 영향력 증대를 어느 수준까지 용인할 것인지, 문민 통제는 차질 없이 지속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한 검토가 선행되어야 한다. 작전권 환수를 서두르는 사람들은 역설적으로 민주화의 시계를 거꾸로 돌릴 수도 있음을 알아야 한다.
이재호 수석논설위원 leejaeh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