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은 자존심의 화신(化身) 같다. 오늘도 스스로 자존심을 높이고, 국민의 자존심을 북돋우는 연설을 할 듯싶다.
하지만 광복 61주년을 맞으며, 대일(對日) 무역적자가 사상 최대라는 산업자원부 발표를 듣자니 나는 자존심이 상한다. 올해 상반기 일본에 대한 수출(130억 달러)은 수입(255억 달러)의 반이다. 그래서 현 정부 2년차이던 재작년 상반기의 달갑잖은 신기록(122억 달러)이 다시 깨졌다.
‘말 폭탄으로 일본을 깬’ 기록이 노 대통령만큼 화려한 전임자는 없다. 김영삼(YS) 전 대통령이 “일본의 버르장머리를 고쳐 주겠다”는 한마디로 파란을 일으켰지만 말 폭탄 발사 빈도나 외견상의 전의(戰意)가 노 대통령에게는 못 미쳤다. YS는 버르장머리를 고치기는커녕 1997년 외환위기 전후(前後) 일본자금의 위력 앞에 패장(敗將)의 모습을 보였다. 지금 최악의 대일적자 성적표를 받아 든 노 대통령의 자존심은 온전할지 궁금하다.
북한이 미사일을 쏜 뒤, 노 대통령은 북한보다 일본에 더 화를 냈다. 일본이 대북(對北) 제재를 주도하자 “일본과는 붙어 봐야 한다”고 했다. 이런 말은 국익과 민생에 전혀 도움이 안 된다고 나는 단정한다.
정말로 자존심을 걸고 일본을 상대하겠다는 대통령이라면 경제적 의존구조를 개선하기 위한 범국가적 노력을 주도했어야 마땅하다. 대통령이 심혈을 기울여 전문성 있는 관료들과 산학연(産學硏)을 풀가동했다면 산업기술 격차를 좁힐 수 있었을 것이다. 세계적 무한경쟁 시대의 대통령이 이런 과제를 팽개치고 3년 반을 허송했다면 광복절 경축사가 무색하다.
대통령의 말 폭탄이 아무리 시원스러운들 ‘사상 최대의 무역적자’ 앞에서 국민이 자존심을 가질 수 있겠는가. 올해 상반기엔 일본에 대한 여행수지도 사상 처음으로 적자(2억 달러)다. 양국관계가 나빠져 일본 속의 한류(韓流)가 시들해진 탓이 크다니, 대통령의 ‘말 펀치’에 박수만 치기도 뭣하다.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는 5년 재임 중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에게 열심히 ‘예, 예’ 했다. “한국 대통령은 미국 하자는 대로 예, 예 해야만 하느냐”고 되묻는 노 대통령이 보기에는 자존심도 없는 사람 같을지 모른다.
그러나 고이즈미의 적극적 대미(對美) 외교는 패전국 일본의 숙원(宿願)인 ‘보통국가화’를 앞당기고 있다. 일본의 평화헌법 9조는 군비(軍備) 및 교전권을 인정하지 않는데, 미국은 일본이 이 조항을 개정해 재무장(군사대국화)하는 것을 적극 지지한다. 결국 고이즈미는 부시에게 밀착함으로써 일본이 아시아의 정치 군사적 강자로 다시 떠오를 활주로를 닦았다.
전후(戰後·패전) 61주년의 날, 전범(戰犯)에게 참배하는 고이즈미를 용인할 수는 없다. 다만 노 대통령이 미국에 ‘예, 예’ 하지만은 않겠다고 공언하고, 일본을 비판의 주적(主敵)으로 삼는다고 해서 국가 자존이 지켜지는 것도 아님을 말하고 싶을 뿐이다.
국내 한 민간연구소의 책임자는 아무리 낙관적으로 보려 해도 우리 경제의 내년 성장률이 4%대에 못 미칠 것 같다고 걱정했다. 자칫하면 노 대통령은 전체 임기(5년)를 통틀어 해마다 세계 평균 경제성장률을 밑도는 성장밖에 이루지 못한 최초의 한국 대통령이 될 가능성이 있다. 그는 “내 임기 동안 경제 걱정은 말라”고 했지만 이런 저성장 성적표를 앞에 놓고도 자존심을 세울 수는 없다.
열린우리당 김근태 의장이 오죽 급하면 ‘평생의 색깔’을 뒤집고, 친(親)기업을 외치며 재벌까지 껴안겠는가. 기업을 살리는 것이 결국 서민을 살리는 길이며, 이것이 정권의 정체성(正體性)과도 통한다는 사실을 이제야 인정한 셈이다. 노 대통령은 이런 이치를 아는지 모르는지, 또 무슨 자존심 때문인지 사사건건 김 의장의 발을 건다.
요즈음 ‘안보 IMF’가 오는 게 아니냐는 섬뜩한 소리까지 들린다. 이른바 ‘경제 IMF’는 “펀더멘털(기초조건)이 튼튼한데 웬 소란이냐”던 경제 관료들을 믿고 있다가 맞았다. 전시(戰時)작전통제권 환수의 위험성을 말하면 “웬 안보 장사냐”고 되받는 정권을 믿고만 있을 것인가. 자존심이라는 말은 아예 꺼낼 수도 없는 지경에 이르면 이미 늦다.
배인준 논설실장 injo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