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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비에서]中개발붐에 스러지는 항일 유적지

입력 | 2006-08-15 03:00:00

충칭 임정의 3번째 청사였던 우스예항의 2층 목조가옥. 표석만 세워진 이 허름한 가옥 주변에는 고층건물들이 빽빽이 들어서고 있다. 충칭=권재현 기자


7일부터 8박 9일간 중국의 항일유적 답사에 나선 ‘운암 김성숙 항일유적 탐방단’은 일제강점기 항일투쟁의 현장을 확인했다.

운암의 행적을 좇는다는 것은 그가 대한민국임시정부와 다른 노선을 걷다가 합류했다는 점에서 좌우 독립운동단체의 궤적을 좇는 일이었다. 그러나 탐방단은 항일투쟁의 현장 곳곳에서 독립유적지 보존의 심각한 불균형을 확인했다. 김구계의 독립유적지는 상대적으로 잘 보존된 반면 김원봉계의 독립유적지는 방치되고 있었다. 특히 상하이(上海) 중심지에 위치한 푸칭(普慶) 리의 임시정부청사는 교통이 편리하고 깔끔하게 단장돼 하루 1000명 이상이 관람했다.

그러나 난징(南京)의 중심지에 위치한 조선민족혁명당의 거점이었던 호가화원(胡家花園)에는 표석조차 없었다. 김원봉이 체류했다는 호가화원 근처에 있는 천태종계의 오래된 사찰 와관사(瓦官寺)는 복원 공사가 한창이었다. 이 절의 처파(徹法·46) 스님은 “한국의 혁명운동가들이 인근에 머물렀다는 이야기를 들어서 알고 있지만 한국인보다는 천태종계 일본인이 더 많이 찾아온다”고 전했다.

탐방단이 찾은 독립유적지는 대부분 중국 대도시에 자리하고 있는데 이들 대도시에서는 현재 대규모 도심개발 사업이 진행되고 있어 얼마 안 있으면 유적의 흔적조차 찾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조선민족혁명당의 전신이라 할 한국대일전선통일동맹이 1932년 결성되었던 상하이 친젠뤼서(勤儉旅社) 여관은 재개발 때문에 이미 허물어졌고, 충칭(重慶)시대 임정의 3번째 청사였던 우스예항(吳師爺巷)의 허름한 2층 목조가옥 주변은 재개발이 한창 진행되고 있었다. 또 임시의정원 의장을 지낸 송병조(宋秉祚·1877∼1942) 선생 등 독립투사들이 묻혀 있다는 충칭 시 허상 산 한인묘지는 쓰레기 하치장으로 변해 있었다.

탐방단에 참가한 장규식 중앙대 교수는 “대대적인 중국의 개발 손길이 닿기 전에 핵심 유적지를 보존할 방안을 하루빨리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베이징=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