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소 소장으로 내정된 것으로 알려진 전효숙(55·사법시험 17회) 헌재 재판관은 임기를 시작한 2003년 8월 이후 3년 동안 주요 사안에 대해 어떤 결정을 내렸을까.
전 재판관이 헌재 주요 결정에서 낸 의견을 분석한 결과 수도 이전이나 이라크 파병 등 현 정부가 추진한 주요 정책에 대해서는 정부 측의 손을 들어 주는 의견을 상당수 냈다.
정부가 행정수도의 충청권 이전을 추진하다가 2004년 10월 헌재의 위헌 결정으로 효력을 잃은 신행정수도건설특별법. 당시 재판관 9명 가운데 8명은 “서울이 수도라는 점은 관습에 의해 형성된 불문헌법에 해당된다”며 위헌 의견을 냈다.
그러나 전 재판관은 “성문헌법 체제에서 관습헌법을 성문헌법과 같거나 특정 성문헌법 조항을 무력화할 수 있는 효력을 가진 것으로 볼 수 없다”며 재판관 9명 가운데 유일하게 각하 의견을 냈다.
노무현 대통령이 국회 연설에서 “대통령의 신임 여부를 국민투표에 부치겠다”고 한 발언과 정부의 이라크 파병이 위헌인지에 대한 헌재 결정에서도 각하 의견을 냈다.
반면 ‘국가보안법상 찬양·고무 및 이적표현물 소지’ 조항과 ‘신문 등의 자유와 기능보장에 관한 법률(신문법)’, ‘언론중재 및 피해구제 등에 관한 법률(언론중재법)’의 주요 조항 등 자유민주주의 체제와 관련된 사안에서는 보수적인 의견을 낸 것으로 나타났다.
2004년 8월 국가보안법 7조 1항과 5항에 규정된 ‘찬양·고무 및 이적표현물 소지죄’에 대해 헌재가 합헌 결정을 내렸을 때 전 재판관도 합헌 의견을 냈다. 신문법의 핵심 조항인 ‘시장 지배적 사업자’ 규정(17조)에 대해 헌재가 올해 6월 위헌 결정을 했을 때 전 재판관도 해당 조항에 대해 위헌 의견을 냈다.
전 재판관은 이 조항을 포함해 4개 조항에 대해 위헌 또는 헌법불합치 의견을 냈고, 신문의 방송겸영 금지 조항 등 4개 주요 조항에 대해 합헌 의견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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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훈 기자 jefflee@donga.com
▼전효숙 재판관은…▼
전효숙 헌법재판소 재판관은 평소 말수가 적고 침착하다는 평을 듣는다.
사법연수원에서 만나 부부가 된 남편 이태운(사법시험 16회) 의정부지법원장이 달변가인 것과는 대조적이다. 그러나 전 재판관은 사석에서도 사회적 이슈에 대해서는 뚜렷하게 주관을 드러낼 만큼 소신이 강한 편이다.
이런 성격은 판결에 그대로 투영됐다.
서울지법 부장판사 재직 때인 1997년 “가혹행위가 없었더라도 무리한 구속수사로 피해를 봤다면 국가가 배상해야 한다”고 판결한 것이 대표적이다.
소수자 보호에 대한 남다른 관심 때문인지 전 재판관은 진보적 성향의 시민단체들에서 여러 차례 여성 대법관과 헌재 재판관 후보로 추천을 받았다.
그러나 헌재 재판관이 된 후에는 뚜렷한 성향이 많이 누그러졌다는 평가도 나온다. 헌재의 한 관계자는 “전 재판관은 어느 쪽에도 기울어지지 않으려는 신중한 모습을 보여 왔다”고 전했다.
1977년 서울가정법원 판사로 법관 생활을 시작해 24년 만인 2001년 여성으로서는 두 번째로 고등법원 부장판사가 됐다.
이후 그는 각종 ‘1호 기록’의 보유자가 됐다. 2003년 2월 첫 여성 고법 형사부장이 됐고, 같은 해 8월에는 대법원장 지명으로 첫 여성 헌재 재판관이 됐다. 다음은 주요 약력.
△전남 순천 출생(1951년) △이화여대 법학과 졸업(1973년) △사법시험 17회(1975년) △서울가정법원 판사(1977년) △사법연수원 교수(1994년) △서울지법 부장판사(1997년) △특허법원 부장판사(1999년) △서울고법 민사부장(2001년) △서울고법 형사부장(2003년) △헌재 재판관(2003년 8월∼)
정원수 기자 needjung@donga.com
▼“盧대통령 사시동기… 경륜 부족” 변협-야당 반대▼
법조계에서는 전효숙 헌법재판소 재판관의 정치적, 이념적 성향과 그동안 헌재 결정 과정에서 보여 준 활동상, 경륜 부족 등을 문제 삼으며 반대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대한변호사협회(회장 천기흥)는 “전 재판관이 지금까지 헌재의 주요 결정에서 ‘정치적 또는 이념적 편향성’을 보였다”는 이유로 반대 입장을 밝혔다.
대한변협은 14일 발표한 성명서에서 “전 재판관은 정치적 이념적 편향성과 대통령과 사법시험 동기라는 연고도 있다”며 “이 때문에 전 재판관이 헌재 소장이 되면 헌재의 결정이 자칫 공정성을 의심받거나 정치적 분쟁을 야기해 국민 전체의 불신을 불러올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또 각종 정치적 쟁점에 관해 국가와 사회의 운명을 좌우할 판단을 해야 하는 헌재의 수장은 대법원장 이상의 경륜과 법률 지식을 갖추어야 하는데 전 재판관의 경우 그러한 자질과 능력을 가졌는지 의문시된다는 것.
또 대한변협은 “헌재 소장은 헌재를 정치적 외풍에서 보호할 수 있어야 하는데, 만약 그렇지 못하면 헌재는 정치적 독립성을 상실해 권력의 통제기관으로서 역할을 할 수 없게 될 것이고 대법원에 예속될 우려도 있다”고 주장했다.
한편 한나라당 황우여 사무총장은 “개인적으로는 훌륭한 분이지만 국가 전체의 헌법적 가치를 지켜나가야 한다는 점에서 중량감이 떨어진다는 느낌”이라며 “헌재 소장도 코드인사를 한다면 노무현 대통령 최대의 실정이 될 것”이라고 비판했다.
민주당 이상열 대변인은 “헌재 소장은 연륜과 균형감각이 있어야 하며 국민의 신뢰가 바탕이 돼야 하는 만큼 코드에 맞는 인사를 내정하려 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하지만 열린우리당 김근태 의장은 “여성이 처음으로 헌법기관의 장에 내정된 것은 의미가 크다”고 평가했다.
민주노동당 박용진 대변인도 “전 재판관이 그간 보여 준 개혁성으로 비춰 볼 때 헌재의 변화를 이끌 적임자라고 판단한다”고 말했다.
정원수 기자 needjung@donga.com
윤종구 기자 jkma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