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영화 팬이라면 ‘영웅본색2’에서 장궈룽(張國榮)이 공중전화 부스에서 막 태어난 딸의 이야기를 하며 죽어가던 장면을 기억할 것이다. ‘열혈남아’에서 장만위(張曼玉)와 류더화(劉德華)가 공중전화 부스에서 키스를 하던 장면도 잊기 어렵다.
이별을 맞거나 풋풋한 사랑을 키워가는 장소로 영화에서 자주 등장하는 공중전화. 그러나 현실에서는 점차 자취를 감추고 있다. 오죽하면 올해 로카르노 국제영화제의 국제비평가상 등을 수상한 ‘내 청춘에 고함’에서 미래에 대한 아무런 희망이 없는 주인공의 직업으로 공중전화 수리공을 설정했을까.
국내에서는 1954년 8월 16일 사람이 관리하는 유인(有人) 공중전화 서비스가 시작됐다. 그로부터 8년 뒤 동전을 투입하는 공중전화기가 설치됐고 이후 공중통신망은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공중전화가 사라져 가는 나라이기도 하다. 현재 전국의 공중전화 부스는 12만8000여 개. 1999년(56만4054개)의 4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 반면 휴대전화 가입자는 3851만여 명에 이른다. 10세 이하 어린이와 70, 80대 이상 노인을 제외하면 경제활동을 하는 사람들은 물론 중고교생까지 대부분의 국민이 휴대전화를 사용한다는 얘기다. 그 결과 통신비 지출은 세계 1위면서도 공중전화는 애물단지 신세가 돼버렸다.
서울시는 청계천 부근 낡은 공중전화 부스가 경관을 해친다며 철거를 요청하는가 하면 아파트 단지 상가에 설치된 공중전화를 없애 달라는 민원도 늘고 있다. 공중전화 부스를 뜯어낸 자리에 은행 현금자동입출금기를 설치하는 모습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요즘엔 도심을 벗어나면 공중전화 찾기도 쉽지 않다.
공중전화의 주된 이용자들은 군인들. 국내에서 가장 많은 매출을 올리는 공중전화도 군 병원에 몰려 있다. 경기 성남시 분당과 양주시 덕정 국군병원에 설치된 공중전화기는 한 달 매출액이 160만 원에 이른다. 반면 일부 농촌 지역 공중전화는 월 매출 1000원에도 못 미친다.
공중전화를 관리하는 회사 측에 따르면 공중전화 한 대의 유지 보수비용은 월 7만 원이지만 한 달 평균 매출은 5만5800원에 지나지 않는다. 배보다 배꼽이 큰 셈. 하지만 국민 생활을 편리하게 하는 공익 서비스란 점에서 공중전화의 수명은 앞으로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김희경 기자 susann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