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유통원이 예산이 없다는 이유로 사채를 끌어다 쓴 사실이 논란이 되고 있는 가운데 유통원 강기석 원장이 자신의 입장을 밝히고 있다. 강 원장은 “진행 중인 사업을 중단할 수 없었고 이는 최고경영자의 책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미옥 기자
신문유통원은신문유통원은 신문법에 근거해 지난해 11월 정부의 예산으로 설립된 재단법인이다. 올해 예산은 107억 원이며 이 중 국고로 지원되는 예산이 100억원이다. 이 중 9억5000만 원은 2월에 지급됐고 나머지 90억5000만 원은 당초 예정에서 두 달 정도 늦은 6월 말 집행됐다. 정부 지원이 늦은 이유는 당초 예정됐던 신문사들의 투자가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신문유통원 예산은 신문사의 자체 투자와 정부의 예산 지원을 연계하는 ‘매칭 펀드’방식으로 조달하도록 규정돼 있다. ‘매칭 펀드’는 신문유통원 회원사들의 도덕적 해이나 탈퇴 등 내부 갈등으로 자칫 정부 부담이 가중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도입됐으나 현재까지 신문사들의 출자는 없는 상태다. 현재 경향 국민 한겨레 등 8개 신문사가 회원사로 가입돼 있다.
《유진룡 전 문화관광부 차관의 경질을 둘러싼 공방이 계속되는 상황에서 정부 산하기관인 신문유통원이 기획예산처의 예산 미집행을 이유로 사채를 끌어다 쓴 사실이 새로운 논란거리로 부상하고 있다. 사채를 빌려 쓴 유통원 강기석 원장은 “최고경영자(CEO)로서 당연한 책무”라고 말했으나 ‘주먹구구식 산하기관 운영의 사례’라는 지적이 일고 있다. 》
다음은 강 원장과의 일문일답.
―정부 산하기관의 보조위탁기관이 예산이 없다고 사채를 끌어다 써도 되나.
“이미 착수해 진행 중인 사업이 있는데 예산이 없다고 어떻게 중단을 하나. 그건 무책임한 이야기다. 4월 첫 공동배달센터를 연 뒤 4월에 2곳, 5월에 3곳의 공배센터를 열려고 장소 물색과 보증금 지불 등의 절차를 진행하던 중이었다. 그런데 4월 중순 원래 받기로 했던 돈이 나오지 않았다. 문화부가 나에게 예산 집행 때까지 사업을 ‘올 스톱’하라 했으면 나도 사업 중단한다. 그런데 문화부가 계속 ‘기다려라’ ‘곧 나온다’고 했는데 어떻게 내가 사업을 중단하는가.”
―유통원이 부도 위기에 처했다는 것이 사실인가.
“그렇다. 돈이 없으니 외상으로 집기를 들여오고 급한 돈은 카드로 막았다. 6월 초에 이미 적자 상태였고 6월 말 부도가 예상되는 상황이어서 돈을 빌려 온 거다. 6월 20일경 돈을 빌려 두 번째로 1억 원이 입금됐을 때 직원들에게 ‘이 돈을 다 쓰고도 예산이 안 나오면 우린 스톱이다’라고 말했다.”
―돈을 누구에게 얼마나 빌려 어디에 썼나.
“사업을 하는 지인과 친척 등에게서 세 차례에 걸쳐 2억5000만 원을 빌려 유통원에 입금했다. 당장 급한 상황이라 본부장도 700만 원, 부장도 300만 원씩 사재를 털었다. 그 돈으로 급한 빚을 갚고 5월 30일, 6월 1일, 6월 15일 공배센터 3곳을 열었다. 본부 직원 20명의 월급은 못 줬고 센터 3곳 계약직 직원들의 인건비는 줬다. 6월 23일 예산이 집행된 뒤 빚은 모두 갚았다. 이자 60여만 원은 내가 갚았다.”
―돈을 빌려 준 사람과 약정서는 썼나.
“그런 거 안 했다. 정부 기관이 어려우니까 좀 도와달라고 한 건데 그런 거 쓰고 할 사이도 아니고. 어떤 형식으로 빌려야 하는지 그런 건 난 잘 모르고 직원에게 ‘일단 돈이 들어올 테니 회계 문제는 너희가 처리하라’고 했다. 입출금 장부는 국회가 요청하면 공개하겠다.”
―정부 산하기관의 보조위탁기관인데 왜 금융기관의 정식 대출을 받지 않고 개인에게 빌렸나.
“거래 은행에 대출을 요청했는데 은행이 비공식적으로 ‘6월 29일 헌법재판소 판결을 보고 난 뒤에 이야기하자’고 하더라. 급해서 일단 개인 빚을 냈고, 다른 은행에 대출을 또 신청해 승인이 떨어졌는데 돈을 받기로 한 하루 전날 정부 예산이 집행됐다.”
―돈을 차입해 오면 이사회의 의결을 거쳤어야 하는 것 아닌가.
“이사회를 소집하려면 2주 전에 통보해야 하는데 너무 급한 상황이어서 이사회의 의결은 거치지 못했다. 또 개인 돈을 빌렸는데 이사회에 의결을 해 달라고 할 수는 없지 않은가. 그 대신 추가 경비 발생을 없애기 위해 이자는 전부 내가 갚았다.”
―유통원 예산 미집행과 관련해 기획예산처 관계자를 만난 적이 있나.
“5월에 기획예산처 장관을 만났다. 유통원의 어려운 상황을 설명하니 장관은 ‘예산 집행의 조건이 (문화부와) 해결되지 않았다’고 하더라. 신문사와 정부가 공동 출자하는 ‘매칭펀드’ 조건과 내년 예산의 전망이 불투명하다는 지적 같았다. 이 문제로 기획예산처와 문화부 사이에 갈등이 있었는지는 난 모른다.”
―유통원 파행 운영에 문화부의 책임은 어느 정도라고 보나.
“유통원이 어려웠던 건 사실이지만 그 책임 소재에 대해 내가 말할 처지가 아니다. 유통원 운영에서 최대 문제는 매칭펀드 제도 그 자체였다. 수익을 낼 수 없는 유통원에 맞지 않는 제도다. 그런 문제점을 문화부에 여러 차례 말했고 문화부도 수긍했다. 올해 들어 문화부는 지난해보다 훨씬 유통원 업무에 적극적이었다. 지난해 11월 정동채 전 장관 면담 요청을 했을 때는 거절당했다. 그런데 올해 김명곤 장관은 두세 번 만났고 적극적인 지원도 약속받았다.”
―유 전 차관과 유통원 예산 문제를 논의한 적이 있나.
“유 전 차관과 공식적으로 만난 적이 없다. 차관이 다뤄야 할 업무인지 아닌지 난 모른다. 지난해 매칭펀드 제도 도입이 결정될 때도 유 전 차관은 정책홍보관리실장이었는데 왜 그가 직무유기를 했다고 하는지 나도 궁금하다. 책임이 있다면 문화부의 유통원 실무 책임자였던 국·과장에게 물어야 하는 것 아닌가.”
―유통원 파행 운영에 유 전 차관이 얼마나 책임이 있다고 보나.
“내가 대답할 사안이 아니다. 자꾸 유통원 직무유기가 거론되니 나도 곤란하다. 유통원의 문제가 차관의 직무유기인지, 직무유기를 했다고 해도 유통원 운영이 차관을 경질할 만큼 중요한 일인지 나도 궁금하다. 나는 유 전 차관이 유통원 문제에 어떤 형태로 관여했는지, 혹은 관여했어야 하는지 전혀 모른다. 차관이 날 만나야 했는데 만나지 않았던 거라면 직무유기이겠지만, 차관이 날 만날 필요도 없는 일이었다면 그게 왜 직무유기인가.”
김희경 기자 susann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