롭스 ‘꼭두각시를 든 부인’(1895년). 사진 제공 국립현대미술관
《여기 여자를 사악한 존재로 본 두 판화가가 있다. 펠리시앵 롭스(1833∼1898)와 에드바르 뭉크(1863∼1944). 두 사람의 작품에서는 다같이 세기말 유럽에 드리워졌던 그늘을 확인할 수 있다. 작품 ‘절규’로 유명한 뭉크와 달리 롭스의 이름은 낯설지만 유럽에서는 최근 재조명되는 작가다.》
서울 중구 정동 덕수궁미술관에서 10월 22일까지 열리는 ‘롭스 & 뭉크’전은 세기말의 그늘을 상징하는 ‘사악한 여자들’을 만나는 자리다. 두 화가의 작품 중 여성이 등장하는 판화를 모았다. 국립현대미술관과 벨기에의 트랜스페트롤재단 공동 주최.
롭스 쪽이 좀 더 날카롭다. 벨기에 출신인 그는 19세기 말 주간지와 문학작품의 삽화가로 이름을 날렸다. 잡지에서 기른 시사 감각 덕분에 롭스의 작품은 현실에 대한 신랄한 풍자로 가득하다. 이번에 전시되는 판화 61점에서 그의 풍자 의식은 주로 여성을 통해 구현된다. 롭스는 워낙 파격적이어서 논란이 분분하다가 작품성을 인정받은 작가다.
대부분 그의 작품에서 여성은 치명적인 매력으로 남성을 유혹해 지옥에 빠뜨리는 ‘팜 파탈’로 묘사된다. 눈을 가린 채 돼지의 인도를 받으면서 걸어가는 창녀를 그린 롭스의 대표작 ‘창부 정치가’, 칼을 숨긴 채 남자 꼭두각시 인형을 높이 쳐든 여인을 그린 ‘꼭두각시를 든 부인’ 등이 그렇다. 롭스는 여성과 더불어 열정적인 삶을 산 것으로 잘 알려졌으니, 실제로 여성에 대한 인상이 안 좋았다고 할 수 없을 것 같다. 롭스의 ‘팜 파탈’은 당시 부르주아의 이중적인 삶의 상징으로 봐야 할 것이다.
뭉크의 작품 속 여성들은 우울한 모습이다. 이번에 전시된 판화 37점을 보면 대표작 ‘마돈나’를 포함해 하나같이 어두운 배경에 얼굴도 퀭하다. 그럴 법도 한 것이 작가 자신이 어두운 기억을 갖고 있다. 노르웨이 출신인 그가 다섯 살 때 어머니가 세상을 떠났고 두 살 위 누이도 10대에 결핵으로 죽었다.
새로운 여성상과 남성상이 극렬하게 대립하던 19세기 말 20세기 초의 유럽에 살면서 ‘여성=죽음’인 뭉크의 개인사에 기존 질서를 위협하던 여성상이 덧입혀졌다. 여자가 머리를 숙이고 남자의 목에 입술을 갖다 댄 ‘흡혈귀’, 신사복을 갖춰 입은 남자들 사이를 거침없이 걸어가는 누드의 여자를 그린 ‘골목길’ 같은 작품에서 여성으로 대표되는 시대의 변화에 대한 작가의 공포가 전달된다. 02-2022-0600
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