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명문대를 졸업하고 저널리스트가 되는 꿈을 키우고 있는 앤드리아 삭스. 그가 패션계의 실력자인 ‘런웨이’지 편집장 미란다의 개인비서로 일하며 겪는 지옥 같은 직장생활을 재미있게 써내려 간 소설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가 화제다. 삭스는 선임비서 에밀리가 ‘미란다로부터 언제 전화가 올지 몰라 몇 시간씩 화장실에도 못 간다’는 사실을 알고 놀란다. 미국에서 직장생활을 해 본 사람들은 화장실에 못 갈 정도는 아니라도 노동 강도(强度)가 상상을 초월한다고 말한다.
▷미국에서는 법에 정해진 30분과 회사가 제공하는 30분을 합쳐 점심시간이 1시간이지만 대개 자기 자리에서 샌드위치와 커피로 때운다. 그래서 ‘테이크아웃’ 문화도 발달했다. 반면에 밤늦도록 회사에 붙어 있으면 ‘무능하다’는 꼬리표가 붙기 십상이어서 집에 일을 들고 가는 한이 있어도 퇴근시간에는 ‘굿바이’ 하며 미련 없이 자리를 박찬다.
▷“술집, 노래방, 다시 술집…. 5차를 뛰고 새벽 4시에 집에 갔다. 그런데 모두들 아침 일찍 나와 멀쩡히 일했다.” SK그룹에서 ‘글로벌 인턴십’ 과정을 마친 어느 외국 대학생이 5차까지 회식을 하고도 멀쩡하게 정시 출근하는 한국의 기업문화에 ‘감탄하며’ 올린 글이다. 그에게는 한국 직장인들의 놀라운 투혼(鬪魂)으로 느껴졌을지 모르겠지만 일단 출근 눈도장을 찍은 뒤 사우나에서 뻗어 본 경험자들은 쓴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겠다.
▷우리나라 근로자의 근무시간은 선진국보다 길지만 공사(公私)가 불분명한 이런저런 이유로 효율성과 생산성은 근무시간과 비례하지 않기 일쑤다. 근무시간에 담배 피우러 가면서도 동료들을 우르르 끌고 나가고, 자판기 커피 한 잔도 왁자지껄 모여서 마신다. 일본 근로자들은 근무 정시 이전에 단체체조를 마치고 공구(工具)도 미리 준비하지만 우리 근로자들은 체조도, 공구 준비도 근무시간이 시작된 뒤에 하는 것을 예사로 여기는 풍토가 남아 있다. 외국인 인턴은 ‘일하듯 놀고, 놀듯 일하는’ 한국인 근로문화에 대해 ‘칭찬하듯 비꼬는’ 건 아닐까.
정성희 논설위원 shchu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