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바논 위기란 무엇이었던가. 한국과 일본의 많은 독자는 이를 레바논에 대한 이스라엘의 공격으로 받아들였을 것이다. ‘헤즈볼라의 미사일 공격으로 이스라엘 사람들이 희생당했다고는 하지만 레바논이 당한 희생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헤즈볼라로부터 받은 타격을 훨씬 웃도는 공격을 한 이스라엘 정부가 문제다.’ 이런 인식이다.
이스라엘, 그리고 미국의 많은 독자에게는 똑같은 사건이 완전히 다르게 비칠 것이다. ‘레바논 남부 점령지에서 이스라엘군이 철수한 뒤 헤즈볼라의 근거지가 급증해 이스라엘의 안전이 위협받아 왔다. 헤즈볼라의 거점을 깨부수지 않는 한 이스라엘은 안전할 수 없다. 문제는 이스라엘에 대한 헤즈볼라의 공격이다.’ 이런 생각이다.
두 관점은 각기 다른 한쪽의 희생자에게만 시선을 두고 있다. 이스라엘 공격에 초점을 두는 사람들은 레바논의 희생자, 특히 여성과 어린이 희생자들만을 보고 있다. 헤즈볼라의 공격에 주목하는 이들은 그 공격의 희생자가 된 이스라엘의 여성과 어린이들을 이야기한다. 아랍권의 알 자지라 방송과 미국의 폭스뉴스는 같은 사건에 대해 각각 다른 희생자를 거론하며 정반대의 해석을 하고 있다.
그러나 국제정치라는 관점에서 보면 레바논 위기는 ‘이스라엘의 공격인가, 헤즈볼라의 공격인가’라는 구분 이상의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다. 이 위기는 무엇보다 중동의 긴장을 확대시킬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우선 이라크를 보자. 이 나라의 정치적 혼란은 같은 시기의 레바논 위기로 생겨난 희생자보다 더 많은 희생자를 낳았다. 이라크 국내의 정치적 대립은 사실상 내전으로 이어질 수 있는 상황이다. 그 북쪽에 위치한 터키는 이라크 북부 쿠르드족의 활동이 터키 국내 쿠르드족 운동을 자극하고 있다는 경계감이 커지면서 군사행동도 마다하지 않을 태세다.
시리아와 이란은 레바논 정세의 전개에 의해 자국의 우위를 확보하려는 활동을 계속하고 있다. 헤즈볼라가 이스라엘의 공격에 맞서 버팀에 따라 사우디아라비아와 이집트처럼 서방에 우호적인 나라에서도 정부에 대(對)이스라엘 강경노선을 요구하는 여론이 들끓고 있다. 즉, 레바논 위기는 이라크에 이어 중동에서 제2의 ‘권력 진공(眞空)’을 만들어 냄으로써 이 지역의 긴장을 전례 없이 고조시킨 것이다.
레바논에서 휴전의 필요성은 이스라엘의 공격이 균형을 잃었다거나 헤즈볼라의 무법적인 공격을 허용해서는 안 된다는 것처럼 그 자체로 정당한 논리에서만 생겨나는 것이 아니다. 레바논의 혼란이 확산되면 중동에 제2, 제3의 분쟁을 부른다는 국제정치적 판단 때문에 휴전이 필요한 것이다.
여성과 어린이들의 희생에서 국제분쟁을 파악해야 한다는 주장에는 확실히 귀를 기울여야 할 점이 있다. 그러나 국제분쟁의 타개를 생각할 때 한쪽의 희생만을 본다면 문제를 해결하기는커녕 오히려 꼬이게 만들 수도 있다. 이스라엘의 공격을 우려하는 사람들은 헤즈볼라의 공격을 자위를 위한 행동으로 인정할지도 모른다. 거꾸로 헤즈볼라의 공격을 걱정하는 사람들은 이스라엘의 행동은 정당한 자위 조치라고 생각할지 모른다. 하지만 어느 쪽의 생각도 그것만 강조한다면 분쟁을 타개해 평화를 구축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
필요한 것은 이스라엘이나 헤즈볼라에 대한 비난이 아니다. 어떻게 하면 이 지역의 분쟁을 타개할 수 있는지, 이를 위한 제도적 조건은 무엇인지를 생각하는 일이다.
‘적’의 희생도 ‘우리 편’의 희생도 같은 눈으로 봐야 한다. 국제분쟁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어느 한쪽 희생자만 보지 않는 균형 잡힌 시각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후지와라 기이치 도쿄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