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일 개봉하는 김기덕 감독의 ‘시간’은 성형수술이라는 극단적인 방법을 통해 시간을 붙잡으려는 연인에 관한 이야기다. 사진 제공 스폰지
김기덕 감독의 영화는 ‘폭력적’ ‘반페미니즘’ 등의 이유로 일반 관객에게는 어쩐지 불편하게 느껴지는 점이 많았을 것이다. 그러나 24일 개봉하는 ‘시간’은 좀 더 많은 사람에게 다가갈 수 있을 영화다.
물론 얼굴에 구멍을 뚫고 뼈를 갈아내는 적나라한 성형수술 장면과 김기덕 특유의 묵직한 철학적 성찰이 부담스럽게 느껴지지 않는다면 말이다.
2년간 사귄 연인 세희(박지연)와 지우(하정우). 세희는 지우의 마음이 변했다고 생각하면서 ‘다른 여자가 그를 보기만 해도 눈을 파 버리고’ 싶을 만큼 예민해졌다. 지우는 그런 그녀에게 피곤함을 느끼게 되고 이에 세희는 어느 날 갑자기 모든 흔적을 감추고 사라져 버린다. 6개월 뒤 성형수술로 다른 모습이 된 세희는 ‘새희’라는 이름으로 다시 지우에게 접근하지만 지우가 사랑하는 것은 예전의 자신임을 알게 된다. 새희의 정체를 알게 된 지우는 경악하지만 그 역시 새로운 모습을 위해 그녀를 떠나고 새희는 그를 찾아 헤맨다.
인간이 가장 무서워하는 것은 시간일지도 모른다. 세희, 아니 새희의 말처럼 “모든 것을 변하게 하는 시간”. 시간을 붙잡아 두기 위해 세희는 성형수술을 받는다. 병원 문에는 “새로운 삶을 원하십니까?”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육체가 바뀌면 정말 새로워질까? 그러나 새로운 그녀는 지우의 마음을 알게 되면서 과거의 자신을 질투해야 하는 상황에 빠지게 된다. 사실 지우는 우리 모두가 알고 있듯 ‘사랑하지 않아서가 아니고 설렘이 식고 몸이 식고 열정이 식은’ 것이었는데.
영화 마지막에서 또 성형수술을 한 새희는 이전의 자신과 병원 앞에서 마주친다. 그의 이야기는 끝이 아니었던 것. 지우와 세희 혹은 새희가 만나는 카페, 어느 섬의 조각공원 등 같은 공간이 계속 등장한다. 김기덕 표 영화답게 시간과 공간이 반복적으로 순환되고 그 속에서 두 사람, 아니 세 사람은 혼란스러워한다.
진짜 사랑하는 게 뭔지, 존재는 무엇이고 거기서 육체는 어떤 의미를 갖는 것인지, 영화는 끊임없이 생각하게 만든다. 감독의 말에 따르면 “시간을 견디는 것이 인간이며 반복 안에서 새로움을 찾는 것이 사랑”이란다. 너무 착한 메시지. 시사회에서 만난 한 평론가는 “김기덕이 너무 착해졌다”고 중얼거렸다.
사랑하는 여자가 있으면서도 다른 여자랑 자는 게 싫지는 않은 보통 남자들의 심리(그렇지 않은 남성들에겐 죄송)를 잘 표현한 하정우, 광기어린 모습을 보여 준 성현아의 연기는 인상적이고 이들이 툭툭 던지는 엉뚱한 대사에는 의외의 유머가 있다. 성형 전 세희를 연기한 박지연과 성형 후 새희 역의 성현아가 묘하게 닮은 것도 흥미롭다. 올해 체코 카를로비바리 영화제 개막작. 18세 관람가.
채지영 기자 yourca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