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일 열린 국회 운영위원회는 유진룡 전 문화관광부 차관 외압 경질에 대한 청문회를 방불케 했다. 이날 회의의 안건은 대통령비서실 결산. 그러나 여야 의원들은 질의의 대부분을 이백만 대통령홍보수석비서관과 양정철 홍보기획비서관을 상대로 유 전 차관에 대한 인사 청탁 문제 추궁에 할애했다. 특히 인사 청탁 파문 이후 처음으로 공개석상에 나온 양 비서관에게 의원들의 질타가 쏟아졌다. 한나라당 의원들은 양 비서관이 17일 오마이뉴스에 올린 글을 통해 “청문회, 얼마든지 하십시오. 열 번 백 번 하십시오. 야당이 그렇게 한가하고 자신이 있으면 면책특권을 포기하고 당당하게 진실을 가리는 장으로 나오시라”고 주장한 대목을 추궁했다. 양 비서관은 의원들의 질의를 중간에 자르고 말꼬리를 잡는가 하면 용어 선택을 문제 삼으며 질문을 제대로 못한다고 핀잔까지 줬다. 이날 회의를 지켜본 사람들은 “TV로 생중계된 국회 공개회의에서 의원들에게도 저렇게 방자한 태도를 보이는데 유 전 차관에게 어떻게 했을지는 미뤄 짐작할 수 있는 게 아니냐”고 입을 모았다. 다음은 한나라당 이군현 이병석 김양수 의원의 추궁과 양 비서관의 답변 내용.》
아리랑TV 인사개입했나
―청와대에서 홍보비서관의 업무 분장이 뭡니까. 정확히 숙지하고 있지 못하는 거 같은데 아리랑TV 부사장 인사 협의한 게 업무와 무슨 관계가 있습니까.
“광의의 업무라고 생각합니다.”
―청와대에서 아리랑TV 인사 부탁한 것은….
(질문을 자르며) “부탁이 아닙니다.”
―그럼 대통령비서관이 인사 청탁이나 협의를 할 때 동네방네 선언하고 하겠습니까.
“그건 유진룡 전 차관의 생각이고, 문화부 장관이나 아리랑TV 사장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아니, 그건 당신 생각이고….
(질문을 자르며) “의원님, 당신이라는 표현은 안 쓰셨으면 좋겠습니다.”
―이 얘기는 안 하려고 했는데, 정태수 전 한보 회장의 비서를 하지 않았습니까.
“비서 한 적 없습니다. 확인해 보셨습니까?”(양 비서관은 1995∼1997년 한보사태 당시 한보그룹에 근무한 적이 있다.)
―사학법 개정 당시 박근혜 대표에게 가출했다고 하고, 박 대표가 역사의식이 없다고 하고, 동아일보 조선일보에 대해 ‘저주의 굿판을 걷어치워라’는 발언을 했죠?
“글을 썼습니다.”
―그런 표현을 했죠?
“그건 제 소신입니다.”
삼성에 분담금 요구했나
―2004년 9월 삼성그룹에 전화를 걸어 돈을 요구하지 않았습니까.
“돈을 요구한 게 아니고 행사 전반의 진행 상황을 삼성 부사장과 의논한 것입니다. 국회에서도 얘기했으니 속기록을 찾아 보십시오.”
―발뺌하다가 결국 공식 사과한 적 있지 않습니까.
“유감 표명을 했습니다. 돈 얘기 꺼낸 데 대한 사과가 아닙니다. 속기록 봤으면 좋겠습니다.”
―사과하고 유감 표명하고 뭐가 달라요. 이런 행동들이 비서관의 행동으로 옳다고 생각하십니까. 비서관의 본분을 벗어난 오만 방자한 행동을 하고 있지 않습니까.
“의원님 생각입니다.”
―제 생각이 아니라 국민의 생각이 그렇습니다. 박 대표나 조선, 동아에 대한 글이 대통령비서관의 본분이라고 생각되지는 않습니다.
“대통령비서관의 본분을 넘어간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2004년 삼성에 전화해서 8억 원 정도 분담금이 모자란다고 전화하셨죠?
“당시 삼성과 통화했고….”
―전화했죠?
“예.”
‘삐딱한 답변태도’ 논란
―열 번이고 백 번이고 청문회 하자는 말 했죠? 야당도 자신 있으면 면책특권을 포기하고 당당하게 진실을 가리는 장으로 나오라고도 했죠?
“말이 아니라 글을 썼습니다. 질의를 정확히 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계속 그런 태도로 답변할 겁니까? 헌법에 보장된 국회의원의 면책특권을 무시한 것 아닙니까. 일개 비서관이 오만 방자하게… 국회의원을 무시한 것을 사과해야 합니다.
“일개 비서관이라는 말 쓰지 말아주십시오. 사과할 말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어떻게 그런 해괴한 말장난을 합니까. 그렇게 하니까 대통령을 욕보이는 겁니다. 비서관은 더욱이 뒤에 있어야 됩니다. 왜 그리 쫑알댑니까. 어떻게 비서관이 대한민국 입법부에 대해 그 내부의 면책특권에 관한 논의를 할 수 있습니까.
“지적한 내용에 대해 답변해도 되겠습니까?”
―청와대 홈페이지 보니까 본인은 ‘10년 후 나는 어디서 무엇을 할까, 스스로 질문한 뒤 무념무상이라고…아무 생각 없다’고 답변했는데 혹시나 대통령비서관 하면서 아무 생각 없이 하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양 비서관의 매끄럽지 못한 언사를 보면서 안타까운 생각까지 들고 있습니다.
“유념하겠습니다.”
박민혁 기자 mhpark@donga.com
길진균 기자 leon@donga.com
▼양정철 비서관은 누구▼
양정철(42) 대통령홍보기획비서관은 청와대 참모 중에서도 그동안 독설을 유독 많이 해 왔다. 그는 기회 있을 때마다 야당과 언론에 대해 막말을 퍼부어 청와대 내의 이른바 386참모 중에서도 강경파로 통한다.
그는 1988∼1994년 언론노보 기자를 했고 1994년 나산그룹 홍보실을 거쳐 1995∼1997년 한보사태(1997년 1월 한보철강 부도 및 이와 관련된 권력형 금융 부정사건) 때 한보그룹 정태수 총회장 비서로 근무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는 한보에 근무했지만 정 총회장의 비서는 아니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2001년엔 위성방송사인 스카이라이프 홍보실장도 지냈다.
2002년 노무현 대통령 후보 캠프에 합류한 뒤 2003년 대통령국내언론비서관실 행정관(3급)으로 청와대에 들어가 현재 1급 비서관으로 고속 승진했다.
스카이라이프 근무 시절 사내 문제를 외부에 누설했다는 이유로 2002년 해고를 당했다. 해고 직후 회사를 상대로 해고무효소송을 내 1심에서 승소했으나 회사 측이 불복해 항소심이 진행되던 중 지난해 4월 회사 측은 해고무효를 확인하는 서울고법의 조정안을 받아들였다. 법원의 조정안은 양 비서관에게 2002년 3월 10일부터 2005년 4월 28일까지 월 663만3340원씩 모두 2억4200여만 원의 임금을 지급하라는 것이다.
위성방송인 스카이라이프가 법원의 조정안을 받아들인 것은 당시 양 비서관의 신분을 의식했기 때문일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아리랑TV 인사 개입 논란에서 청와대가 스스로 밝혔듯이 대통령홍보수석실 비서관 자리는 방송정책과 무관치 않은 자리이기 때문이다.
양 비서관은 지난해 8월 삼성그룹 측에 대통령이 참가하는 행사의 비용 등과 관련해 ‘협의’한 사실이 드러나 결국 ‘공개사과’를 하기도 했다. 그는 이 내용을 기사화한 본보의 첫 보도 직후 “강경 대응 하겠다”며 사실을 완강히 부인하다가 뒤늦게 이를 시인해 눈총을 받았다.
이달 초 경질된 유진룡 전 문화관광부 차관은 양 비서관의 인사 청탁을 들어주지 않자 양 비서관이 청와대 행정관을 통해 “배 째드리지요”라는 협박성 발언을 전해 왔다고 밝혔으나 양 비서관은 이를 부인하고 있다.
양 비서관은 2004년 본보의 신행정수도 이전 관련 보도에 대해 “저주의 굿판을 걷어치워라”고 막말을 했다. 그는 지난해 8월에는 노 대통령의 대연정 제안을 거부한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에 대해 “박 대표의 반응은 책임감, 결단, 역사의식, 깊은 성찰, 일관성 등 5가지가 없는 5무(無)”라고 원색적으로 비난해 한나라당의 반발을 사기도 했다.
정연욱 기자 jyw11@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