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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향가 노래 하는게 꿈”…전국 국악賞 휩쓰는 허화열 씨

입력 | 2006-08-28 03:00:00

마흔 살 넘어 국악계에 입문해 전국시조가사가곡 경창대회에서 대통령상을 받은 허화열 씨. 그는 “모든 것이 빨라져 가는 시대, 정가는 ‘느림의 미학’을 일깨워 준다”고 말했다. 박영대 기자


《“정가(正歌)는 남에게 자랑하기 위해 부르는 노래가 아니라, 시조의 내용을 깊이 생각하며 자기 마음을 다스리는 노래입니다. 그래서 나이들수록 깊은 맛을 낼 수 있지요. 슬픈 것은 슬픈 대로, 애달픈 것은 애달픈 대로, 그리운 것은 그리운 대로 부르면서 말이지요….”》

마흔 살의 나이에 늦깎이로 국악을 배우기 시작한 허화열(51) 씨. 그는 입문한 지 10년 만에 각종 대회에서 국악인으로서는 평생 한 번 받을까 말까 한 상을 휩쓸고 있다. 그는 지난해 10월 임방울국악제와 올해 5월 전주대사습놀이 시조 부문에서 장원을 차지한 데 이어, 22∼24일 서울 중구 문화회관에서 열린 ‘전국시조가사가곡 경창대회’에서 시조 부문과 가사 부문 장원으로 대통령상을 받았다.

경북 경주에서 20대부터 식당을 경영해 온 허 씨가 정가(시조창, 가사, 가곡)를 배우게 된 것은 1996년부터. “나이가 드니까 어릴 적 마을에서 어른들이 둘러앉아 무릎 장단을 치며 노래하던 게 문득 떠올랐다”는 그는 경주에서 여창가곡으로 유명한 박덕화(경북 중요무형문화재 28호 가곡 예능보유자) 선생을 수소문해 찾아갔다.

“진주교대의 박홍규(첼로 전공) 교수는 시조창 한 수를 배우려다가 그 아름다움에 빠져 결국 정가로 박사학위까지 하고 있습니다. 저도 처음엔 어려웠지만 할수록 맛이 들더군요. 특히 동호인들과 함께 산에 가서 전망 좋고 평평한 자리에 앉아 시조를 한 수 읊는 기분은 최고입니다. 지나가는 사람들도 부러운 듯 쳐다보고…. 신선이 따로 없죠.”

허 씨는 2003년 평생 일해 온 식당도 그만두었다. 그리고 2년간 검정고시를 준비했다. 젊은 시절 집안 형편 때문에 학업을 마치지 못한 그는 검정고시로 중고등학교 과정을 마쳤다. 그리고 지난해 동국대 한국음악과에 입학했다. 캠퍼스 동기들은 서른 살이나 어렸다.

“대학에 간 것은 노래 공부를 하기 위해서만은 아닙니다. 국문학 역사학 한문학 등 다양한 이론을 배워 정가의 내용을 더욱 깊이 이해하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경주에 살고 있는 가객으로서 ‘신라 향가’를 오늘날 재현해 내고 싶은 꿈도 있습니다.”

현재 신라 향가는 ‘도솔가’ 등 14수가 전해지고 있지만 조선시대 가곡, 가사와 같이 노래로 불리진 않고 있다. 그는 “국문학과 교수나 국악계 선생님들의 도움을 받아 언젠가는 향가를 신라 천년의 고도 서라벌(경주)의 대표 음악으로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대한시조협회 추산에 따르면 전국에서 시조창을 하는 인구는 약 200만 명. 대부분이 60대 이상이고, 직장에서 정년퇴임을 한 뒤 배우기 시작하는 사람도 많다고 한다. 허 씨는 “내 나이는 아직 젊기(?) 때문에 어르신들께서 정말 아껴 주시고 잘 가르쳐 주신다”고 말했다.

“시조창을 하는 어르신들은 긴 숨으로 단전호흡을 하기 때문에 80세가 넘어도 건강한 분이 많아요. 요즘 빠른 것만 찾는 젊은이가 많은데 정가를 통해 ‘느림의 미학’을 어릴 적부터 체험하게 해 주면 여유와 참을성 있는 인격 형성에 도움을 줄 겁니다.”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