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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홍기택]메아리 없는 ‘김근태의 뉴딜’

입력 | 2006-08-28 03:00:00


지난달 31일 열린우리당 김근태 의장은 대한상공회의소를 방문한 자리에서 “출자총액제한 등 기업규제를 획기적으로 완화하고 경영권 보호 장치를 마련해 주는 대신 기업은 투자와 일자리 창출에 매진해 달라”는 내용의 뉴딜을 공식적으로 제안했다. 2월 전당대회 때까지만 해도 “헌법 제111조 경제민주화조항에 토지 공개념을 추가할 것을 검토하자”고 좌파적 주장을 했던 것과 비교해 볼 때 엄청난 변신이다.

당의장 취임 후, 여당이 국민의 지지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민생문제 해결이 필수적인데, 그러기 위해서는 일자리 창출의 주역인 기업의 요구를 수용하는 실용적인 정책밖에 없다고 판단한 듯하다. 지난달 삼성전자가 독일기업과 합작으로 한국에 세우려던 반도체 공장을 싱가포르에 짓기로 확정한 사실도 정책적 입장 변화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김 의장은 뉴딜의 사회적 공감대를 얻기 위해 시민단체와 노동계의 적극적 설득에 나섰다. 열린우리당의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뉴딜은 60% 이상의 압도적인 지지를 받고 있다. 야당도 뉴딜에 대한 정치적 의구심에도 불구하고 기업규제완화에는 적극적으로 협조하겠다는 방침이다.

뉴딜은 원래 1930년대 대공황을 타개하기 위해 미국의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이 시행한 일련의 정책을 일컫는 말이다. 1929년 월가의 주식 대폭락 이후 시장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실업자가 속출했다. 이런 상황에서 루스벨트 대통령은 공공사업 확대, 소득보전 등 정부의 적극적인 수요창출 정책과 더불어 시장기능 회복을 위해 증권거래위원회 신설 등 제도개혁을 단행했다.

뉴딜정책이 장기적으로 대공황 탈출에 얼마나 성공적이었는가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으나 단기적 일자리 창출에는 효과적이었다. 뉴딜정책에 이론적 기초를 제공한 경제학자는 영국의 존 케인스다. 케인스는 1936년에 발간한 ‘고용, 이자와 화폐에 관한 일반이론’이라는 저서에서 당시 경제현실을 새로운 시각에서 이해하지 못하고 과거의 편견에 사로잡혀 잘못된 정책처방을 내놓고 있는 경제학자들을 신랄히 비판했다.

김 의장이 뉴딜의 성사를 위해 백방으로 노력하는 것과는 달리 청와대와 정부 일각의 경제현실에 대한 인식은 과거의 시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청와대는 당이 독자적으로 뉴딜을 제안한 것에 대해 비판적이고, 당에서 건의한 기업인에 대한 사면을 거부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출자총액제한제도를 폐지하는 대신 순환출자를 강제로 해소시키는 제도를 고려하고 있다고 한다. 혹을 하나 떼고 대신에 두 개 붙이는 제도를 만들겠다는 것과 마찬가지다. 기업이 외국으로 이전해 나가고 있는데도 재정경제부는 수도권 공장설립 규제가 지엽적인 제도에 불과하다고 한다. 이런 식으로 정책조율이 제대로 안 되면 뉴딜은 또 다른 정치적 공염불로 끝나게 된다.

뉴딜이 성공적으로 타결되기 위해서는 정부 여당 내의 공감대 확산이 필수적이다. 특히 최고 의사결정자의 입장 변화가 요구된다. 그래야만 정부 부처의 불협화음을 해소할 수 있다. 모든 편견을 버리고 균형 있는 시각에서 우리 경제를 재조명해야 한다. 대내적 지역 균형발전이라는 집착에서 벗어나 글로벌 시각에서 우리 경제의 발전전략을 모색해야 한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기업의 투자환경개선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다. 이를 논의하는 자체가 불필요한 소모적인 에너지 낭비이다. 기업 투자가 확대되고, 고용이 늘고, 부가 축적되어야만 양극화가 근본적으로 해소되고 지역균형발전의 토대가 마련된다. 앞으로 얼마 남지 않은 임기 동안이라도 양보와 타협을 통해 통합의 리더십을 발휘해 국력을 키우는 데 매진해야 한다.

홍기택 중앙대 교수·경제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