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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설수설/정성희]사후(事後)피임약

입력 | 2006-08-28 03:00:00


피임약은 인터넷과 함께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발명품 중 하나로 꼽힌다. 1960년 피임약이 개발되자 임신은 여성이 ‘선택’할 수 있는 권리가 됐고, 여성은 ‘임신과 육아’의 굴레에서 크게 벗어날 수 있었다. 이에 따라 여성들은 적극적으로 사회생활에 뛰어들기 시작했으니 여성해방사에서 선거권 획득보다 더 중요하게 치는 것이 피임약이다.

▷그러나 피임약이 처음부터 환영받았던 것은 아니었다. 기독교의 반대로 미국 코네티컷 주(州)에서는 한동안 정식 부부에게도 이를 팔지 않았다. 피임약을 먹는다고 해서 원치 않은 임신이 완전히 사라진 것도 아니었다. 준비가 안 된 상태에서 성관계를 갖고 이미 임신이 돼 버린 경우에는 약이 소용없었다. ‘필요는 발명의 어머니’라고 했던가. 성관계 후 72시간 안에 먹으면 피임률이 89%에 이른다는 사후피임약(모닝 애프터 필)이 1999년에 나왔다. 이 약에는 ‘플랜B’라는 이름이 붙여졌는데 기막힌 작명(作名)이었다.

▷최근 미국 식품의약국(FDA)은 3년간의 논쟁에 종지부를 찍고 18세 이상 남녀에게는 처방전 없이 플랜B를 약국에서 팔 수 있도록 허용했다. 플랜B의 무처방 시판 여부는 그동안 공화당과 민주당, 여성단체와 종교단체 간의 엇갈린 주장 때문에 미국 사회의 난제였다. 이번에도 힐러리 클린턴 상원의원은 즉각 지지성명을 내놓았지만 기독교단체들은 조지 W 부시 대통령에게 “정치적 대가를 치를 것”이라고 경고했다.

▷지지자들은 사후피임약이 미국에서만도 연간 150만 건에 이르는 원치 않는 임신과 80만 건에 이르는 낙태를 막고 10대 미혼모 문제를 해결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그러나 반대론자들은 사후피임약이 의학적으로 낙태와 다를 바 없고 청소년의 문란한 성행위를 부추겨 각종 질병과 임신 문제를 악화시킬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현재 세계 41개국이 사후피임약을 처방전 없이 판매하고 있지만 한국에선 처방전을 요구하고 있다. 미국의 이번 결정이 한국에는 어떤 영향을 미칠지 식품의약품안전청의 ‘플랜B’가 궁금하다.

정성희 논설위원 shchu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