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들은 이윤 총액에서 기록을 연달아 갱신하지만, 공장을 대규모로 폐쇄하는 기록 역시 갱신하고 있다. 매년 연말 결산에서 회사 중역들은 줄지어 꿈같은 거액의 이윤을 챙긴다. 한편 엄청난 대량 실업을 정당화하기에 바쁜 정치인들은 부자들이 새로 얻은 부로 일자리를 몇 개는 만들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부질없는 희망을 품고 세율을 떨어뜨리는 데에만 골몰한다. ―본문 중에서》
오늘날 가장 많이 사용되지만 쉽게 정의 내리기 어렵고 동시에 많은 오해를 불러일으키면서도 이 시대의 ‘정치의 정치’를 만들어 내는 강력한 힘의 으뜸으로 간주되는 지구화(세계화). 이 책은 지구화가 얼마나 광범하게 사용되고, 얼마나 다양하게 정의되며, 얼마나 많은 오해를 만들어 내고, 얼마나 많은 함정을 가지고 있는지, 동시에 오늘날 얼마나 강력한 정치적 캠페인으로 활용되고 있는지를 보여 준다.
앤서니 기든스와 더불어 유럽을 대표하는 지성인 울리히 벡 독일 뮌헨대 교수는 이미 필독의 반열에 오른 저작을 여러 권 출간하였다. 이번에는 그동안 서구에서 벌어진 열띤 지구화 논쟁을 정리하면서 그 대안을 제시한다. ‘지구화란 무엇인가’란 원제에 걸맞게 지구화의 여러 모습, 복합 차원, 다양한 해석, 일상적 함정, 대응 방안이 책 전체의 내용으로 구성되었다. 일단 지구화에 관한 굵직한 이론들이 간명하게 정리되어 있어 지구화의 많은 논의를 쉽게 조망할 수 있게 해 준다. 이를테면 이매뉴얼 월러스틴의 세계체제론을 비롯하여 세계위험사회론, 맥도널드화 테제, 글로컬리제이션(glocalisation)론, 노동 없는 자본주의 신화에 이르는 기존의 지구화 논제가 망라되었다.
지구화에 대한 벡의 입장은 분명하다. 지구화는 부인할 수 없는 오늘의 현실임을 인정해야 한다. 지구화는 이제 국가의 정치로 규정될 수 없는 초국가적 사회관계이자 공간이다. 이것은 경제, 정치, 문화, 시민사회, 생태, 개인 등의 다양한 차원에서 국민국가의 한계를 넘어 초국가적으로 더 밀도 있게 진행된다. 그렇다고 지구화가 동질화되거나 획일화되는 과정은 결코 아니다. 국민국가에 비견되는 이른바 세계국가나 세계정부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지구화의 미래에 대한 우려가 점점 더 심각하게 제기되고 있다. 이를테면 최근 결렬된 도하개발어젠다 협상에서 나타나듯이 여전히 국가적 이해가 전면으로 등장하면서 새로운 정치 가능성으로서의 지구화에 대해 낙관하기 어려운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그렇기에 벡이 제안하는 위로부터의 대안과 아래로부터의 대안에 관심이 모아진다.
그는 유럽연합을 기본 모델로 삼고 있기는 하지만 초국가적인 정치 공간의 필요성을 강변한다. 더욱 진취적이고 흥미로운 부분은 아래로부터의 지구화 기획이라 할 수 있다. 교육정책에 대한 새로운 구상, 초국적 기업에 대한 규제를 위한 소비의 정치화, 시민노동제, 공중기업가와 자기노동자라는 구상, 배제에 반대하는 사회계약 등은 그 기획의 대안으로 신선하게 다가선다.
이 책은 일반 독자가 보기에는 다소 어렵다. 유럽 중심의 독해와 해제가 붙어 있는 것도 폭넓은 대중성을 확보하기에는 충분치 않아 보인다. 그러나 지구화에 관해 제대로 된 독해를 원한다면 울리히 벡의 지구화 문제 제기와 해법 풀이를 꼭 한번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
박길성 고려대 교수·사회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