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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설수설/권순택]서민의 피

입력 | 2006-08-29 03:00:00


“금잔에 담긴 아름다운 술은 백성의 피요, 옥쟁반의 맛있는 안주는 백성의 기름이라. 촛농 떨어질 때 백성의 눈물 떨어지고, 노랫소리 높은 곳에 원망소리 높더라.” 조선 숙종 때 이몽룡과 성춘향의 신분을 뛰어넘은 사랑과 탐관오리들의 가렴주구를 다룬 판소리 춘향가에 나오는 유명한 시이다. 걸인으로 변장한 암행어사 이몽룡은 고을 수령들이 참석한 악질 남원군수 변학도의 생일잔치에서 이 시를 지어 탐관오리들을 혼비백산하게 만들었다.

▷손학규 전 경기지사가 27일 홈페이지에 ‘바다이야기’ 사태에 대한 현 정권의 무책임과 부도덕성을 질타하는 글을 올렸다. 그는 “그렇게 해 처먹을 게 없어서 불쌍한 서민들 피를 빨아먹을 궁리나 했단 말인가”라면서 이 정권을 ‘서민의 피를 빨아먹는 패륜아 정권’으로 규정했다. 지사직에서 물러난 뒤 60일 동안 민생 탐방을 위해 전국을 밑바닥부터 샅샅이 훑은 그가 한 말이니 민심의 바다에서 건져 올린 공분의 육화(肉化)된 표현이라고 하겠다.

▷그동안 사행성 영업 혐의로 기소돼 법원의 판결을 받은 오락실 업주들에 대한 판결문을 보면 이들은 월평균 수억 원씩을 땅 짚고 헤엄치기 식으로 벌어들였다. 한국게임산업개발원에 따르면 지난해 8월부터 올 6월까지 11개월 동안 총 26조7000억 원(53억 장)의 경품용 상품권이 발행됐다. 오락실 업주와 결탁한 환전상들은 상품권을 현금으로 바꿔 주는 것만으로도 5조 원 이상의 수익을 올린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오락실 이용자들이 대부분 서민들이었다고 하니 이 돈의 대부분이 서민들의 주머니에서 나온 셈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2002년 ‘서민 대통령’을 표방해 당선됐다. 하지만 그의 재임 중 집값 폭등과 경제난으로 서민이 최대 피해자가 됐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노 대통령은 24일 열린우리당 의원 6명을 청와대로 불러 만찬을 했다. 3시간이 넘도록 계속된 만찬에서 대통령도 꽤 술을 마셨다고 한다. 서민의 지지로 당선된 노 대통령이 이날 정책 실패로 서민이 겪는 아픔에 대해 어떤 언급을 했는지 궁금하다.

권순택 논설위원 maypol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