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아시아의 쿰트라 석굴에서 발견된 천불도의 일부분. 9세기에 그려진 것으로 추정된다. 사진 제공 국립중앙박물관
반복과 대량생산 미학의 원조는 불교 미술?
불교 미술에서 ‘천불도(千佛圖)’는 독특한 존재다. 천불도는 무수히 많은 부처를 뜻하는 천불(千佛)을 주제로 한 그림. 한 면에 반복적으로 부처가 나타나는 천불도의 구성은 반복성의 미학을 설파했던 앤디 워홀의 ‘메릴린 먼로’를 연상하게 한다.
천불도가 처음 나타난 것은 5세기경 인도와 중앙아시아.
워홀의 작품이 대량생산이라는 자본주의 미학의 전도사 역할을 했다면 천불도 또한 ‘부처의 존재는 하나가 아니라 대량(千佛)으로 나타날 수 있다’는 대승불교 특유의 가르침을 표현하고 있다.
차이점이 있다면 워홀이 대량생산을 묘사하면서 작품 소재 각각의 개성을 없앤 반면 천불도는 각각의 부처를 미세하게나마 다르게 표현하고 있다는 것이다. 대량생산이지만 각각의 존재성을 유지하는 동양적 대량생산인 셈이다.
부처의 반복적 구성이 가져다주는 주술적 이미지와 작업의 용이성 때문에 천불도는 중국, 한국, 일본 등 대승불교를 받아들인 불교 국가 대부분에 전파됐다. 그러나 윤곽과 색깔이 단순화된 부처의 묘사와 반복성 때문에 화려하고 세밀한 불교 미술에 익숙해 있던 당시 귀족들의 냉대를 받게 된다. 우리 역사에서는 고려시대를 끝으로 그 자취를 감췄다.
천불도가 다시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비교적 최근이다. 반복적 대량생산의 미학과 간결 명확한 메시지 전달력이 새롭게 눈길을 끌면서 천불도에 대한 평가도 달라졌다.
국립중앙박물관 주최로 29일부터 아시아관에서 열리는 ‘실크로드에서 온 천불도’ 테마전은 달라진 천불도의 가치를 느낄 수 있는 자리다.
중앙아시아의 투르판, 쿠차 지역 등에서 발견된 천불도 8점이 전시될 이번 행사는 천불의 종교적 의미, 천불도의 표현 방식, 의례와의 연관성, 제작 방식의 특성이라는 주제로 이루어질 예정이다.
국립중앙박물관의 김혜원 연구사는 “예술적 가치가 낮은 것으로 잘못 알려진 천불도에 대한 인식을 바꾸고 이해를 높이기 위해 이번 행사를 마련했다”면서 “반복성, 간략성, 대량생산을 통한 제작의 효율성 등 천불도가 가진 현대적 가치를 느껴 볼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천불도가 워홀에게 열광했던 현대인들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질지 자못 궁금하다.
유성운 기자 polari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