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기존 입장을 재확인한 것뿐인데, 왜 이리 난리인지 모르겠다.”
도널드 럼즈펠드 미 국방장관이 이달 중순 윤광웅 국방부 장관에게 서신을 보내 “전시작전통제권을 2009년까지 한국에 이양하겠다”고 밝힌 사실이 28일 언론에 주요 기사로 보도되자 국방부 관계자들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국방부 관계자는 “미 국방장관의 편지 한 통으로 온 나라가 벌집 쑤신 듯 들썩거려서야 되겠나. 이럴수록 미국만 유리해진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다른 관계자는 “럼즈펠드 장관의 서신은 윤 장관이 지난달 한미 안보정책구상(SPI) 회의 직후 보낸 ‘한국은 2012년 전시작전권 환수를 희망한다’는 편지의 답신일 뿐인데 왜 이렇게 큰 뉴스가 되는지 도무지 모르겠다”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국방부는 또한 “한미동맹은 잘 가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하지만 미 국방 최고책임자가 ‘2012년까지 기다려 달라’는 ‘반세기 혈맹’의 요청을 냉정하게 외면하는 한미동맹의 현주소를 보면서 그런 호언장담을 신뢰할 국민은 많지 않다.
군 일각에선 “북한의 위협과 한국군의 능력을 꿰뚫어 보는 미국이 전시작전권 이양 문제에서 한국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있다”는 비난도 나온다.
그러나 한미동맹이 이 지경에 이른 것은 먼저 미국을 고려하지 않은 한국의 탓이 크다. 현 정부는 시종일관 전시작전권 환수를 대미 종속 탈피와 군사주권 회복으로 다뤘고, 그때마다 전시작전권 문제가 정치적 쟁점으로 변질돼 미국에 부담을 안겨 줬다.
미국에 정통한 군사 소식통은 “현 정부 들어 전시작전권이 반미감정의 불씨가 될 만큼 ‘애물단지’로 전락한 마당에 미국은 하루빨리 불편한 동맹의 족쇄에서 벗어나길 원하고 있다”고 말했다.
럼즈펠드 장관의 서신은 6·25전쟁 때 전사한 미군 5만4000여 명의 희생으로 맺어진 혈맹에 대한 ‘특별대우’는 끝났다는 통보이자, 한국의 자주국방론에 맞서 미국이 내미는 방위비 분담 증액 청구서이기도 하다.
이런 내용을 모를 리 없는 국방부가 럼즈펠드 장관의 편지를 대수롭지 않게 평가한 것은 ‘안보’보다 ‘정치’를 우선시했기 때문이란 분석도 나온다. 이래저래 전시작전권 환수를 바라보는 국민은 조마조마하기만 하다.
윤상호 정치부 ysh1005@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