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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눈/모린 다우드]아들 부시는 매를 맞아야 한다

입력 | 2006-08-29 03:00:00


늙은 왕이 아들 왕을 자신의 무릎에 엎어 놓고 매질을 했다.

뭐, 이런 일이 실제 일어나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그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안 해 보셨는지?

아들 부시는 매를 맞을 법하다. 9·11테러와 오사마 빈 라덴의 등장, 중동의 테러를 야기한 정책 책임자라며 아버지를 비난하려 하니 말이다. 이 셰익스피어적인 부자(父子) 관계는 온갖 권모술수 속에서 아이러니한 상황의 전환을 맞고 있다.

1988년 대선 캠페인에서 아버지가 겁쟁이로 그려지는 것에 분노했던 아들은 이제 아버지를 약한 리더로 묘사하고 있다. 당당했던 아버지가 ‘약한 면모’ 때문에 겪은 일들을 고통스러워하던 아들은 대통령이 되자 서부 텍사스식의 거친 근육질 외교정책을 폈다. 외교적 협상이나 타협, 다자간 협정, 동맹 같은 것들은 ‘무능력’으로 치부했다.

그리고 이제는 아버지와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을 희생양으로 삼는 지경에 이르렀다. 미국이 약하다는 신호를 보내 결과적으로 테러리스트들을 키웠다는 이유다. 그러나 중동 전문가들조차 테러리즘을 부추겨 더 위협적으로 만든 것은 ‘아들 부시의 거꾸로 가는’ 외교정책 스타일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토니 스노 백악관 대변인은 최근 기자들에게 “1991년 미국이 (중동에서) 발을 뗐을 때 빈 라덴은 미국이 약하다는 결론을 내렸고, 그것이 결국 9·11테러를 낳았다”고 말했다.

그 뒤 이 말이 아버지 부시대(代)의 외교 정책가들에게서 거센 비판을 받자 백악관 관리들은 “스노 대변인은 클린턴 전 대통령이 소말리아에서 발을 뺀 것을 말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대변인이 실제로 의미한 것은 쪼그라든 이라크에서의 ‘사막의 폭풍(Desert Storm)’ 작전이었다.

현 조지 W 부시 대통령도 최근 크로퍼드 목장에서 기존의 정부들이 ‘정부 형태보다 안정성이 더 중요하다’는 식의 정책을 펼친 것을 비판했다. 해석하면 이렇다. “아버지는 사우디아라비아의 부패한 독재정권과 중동의 다른 독재자들을 받아들였고 사담 후세인이 권력을 유지하도록 놓아 뒀다. 반면 나는 후세인을 제거해 민주주의를 확립했다.”

그러나 부시 대통령은 이제 이라크와 레바논을 삼켜버린 폭력사태를 진압하기 위해 중동의 지도자들에게 손을 벌리는 상황에까지 내몰렸다. 알 카에다 요원들을 잡기 위해 군부 독재자인 페르베즈 무샤라프 파키스탄 대통령에게 애원하고 있는 것이다.

아버지 부시의 한 참모는 “그들은 역사를 잘못 읽었다”고 꼬집었다.

“경험 없고 세계관도 단순한 현 대통령은 적이 누구인지 쉽게 찾아낼 수 있다고 착각하지만 ‘적을 이기고 민주주의를 확립할 수 있다’는 믿음 자체가 정책이 되는 건 아니다.”

다른 한 참모는 “아들이 외교를 망쳐 놓는 바람에 1991년 자신의 판단이 옳았다는 것을 확인하게 된 부시 1세가 이런 상황을 과연 기뻐할지 의문”이라고 덧붙였다.

아버지 부시는 대통령이 된 뒤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이 이런저런 충고를 하려는 것을 반기지 않았고, 그 자신도 후임자에게 충고하는 것을 싫어했다. 하물며 40대가 되도록 자신의 그늘 밑에 가려 있던 아들에게 잔소리를 하겠는가.

그는 전화로 가끔 아들과 세계정세를 논할 때 ‘이렇게 저렇게 해야 한다’보다는 ‘누가 이러저러한 말을 하더라’고 말하는 스타일이라고 한다.

그러나 세계가 위험에 처해 있는 이 시점에 누군가는 현 대통령이 정신을 차리도록 말해 줘야 한다. 82세에도 여전히 아들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는 아버지 말고 누가 그걸 할 수 있겠는가.

모린 다우드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