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라이트 운동을 표방하는 계간 ‘시대정신’이 강만길(사진) 고려대 명예교수 등 대표적 진보 지식인들을 향한 도발적 문제 제기를 시작했다.
시대정신 가을호는 ‘우리 시대의 진보적 지식인론’이라는 기획연재를 시작하면서 그 첫 번째 인물로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는 강 교수를 향해 ‘민중을 저버린 민족사학자’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이 글을 쓴 최홍재 자유주의연대 조직위원장은 “민중을 위한 역사를 추구한다는 강 교수가 고대 노예제 사회보다 더한 착취와 억압이 존재하는 전근대적 북한정권의 독재와 인권말살에 부역하는 결과를 낳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심지어 ‘전근대적 폭력자의 어용 노릇’이라는 표현까지 써 가며 강 교수를 맹비판했다.
고려대 총학생회장 출신의 최 위원장은 강 교수의 호 여사(黎史)에는 얼굴에 검은 먹물(黎)을 들여야 했던 고대 노예를 위한 역사, 곧 민중을 위한 역사를 추구하겠다는 뜻이 담겼음에도 북한 민중의 노예적 삶을 외면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구체적으로 북한 개성공단 봉사원들의 태도 변화를 거론하며 대결의식이나 냉전의식이 사라졌다는 강 위원장의 인터뷰 발언을 문제 삼았다.
최 위원장은 “김정일은 개성 노동자가 받는 월급 57.5달러 중 50달러 이상을 중간에서 직접, 또는 환치기로 가로챈다”며 “이것은 전근대사에 등장했던 극악한 지주-소작 관계에서도 볼 수 없는 현상이고 갑오농민들이 삼정의 문란시기에 들고일어났던 세금 착취와도 비교할 수 없으며 유일하게 고대 노예제 시대 때 노예들을 착취하던 노예주(主)에나 견주어 볼 수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최 위원장은 친일과 분단, 냉전세력을 하나로 인식하며 북한의 김일성 정권에 비해 남한의 이승만·박정희 정부의 정통성이 약하다는 것이 강 교수의 현대사 인식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해방공간과 대한민국 건국사에서 친일세력은 존재하지 않으며, 한반도 분단 및 냉전세력은 오히려 김일성과 소련이었다는 점에서 이는 오류라고 최 위원장은 지적했다.
최 위원장은 근대 민족국가 수립보다 통일 민족국가 수립을 우선 과제로 설정한 강 교수의 주장에 대해선 “‘민족’은 근대적 가치를 확고히 할 때 의미를 지닐 수 있다”고 반론을 제기했다.
그는 “고대 노예제 사회보다 더한 착취와 억압이 존재하는 전근대적 폭력에 대한 문제 제기 없이 통일을 논하는 것은 폭력에의 동참이자 전근대적 폭력세력을 온존하게 해 통일을 멀어지게 한다는 측면에서 반통일”이라고 비판했다.
시대정신은 이번 호에 이어 리영희, 한완상, 백낙청, 최장집 등 진보적 지식인의 사상체계를 비판하는 글을 차례로 싣겠다고 밝혀 이들 지식인의 대응이 주목된다.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