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조직에서 1인자와 2인자는 보이지 않는 경계 심리가 있기 마련이다. 그래도 이들이 힘을 합치지 않는다면 조직의 목표는 달성하기 힘들다.
프로농구 SK에서는 문경은(35)과 전희철(33)이 그런 존재다. 문경은은 나이나 경력에서 팀 내 ‘넘버 원’이고 전희철은 그 다음.
문경은은 올해 초 전자랜드에서 SK로 트레이드되면서 “희철이가 힘들어질지 모르겠다”며 걱정했다. 자신 때문에 당시 SK에서 팀 내 최고참이던 전희철의 입지가 줄어들고 서로 불편해하지는 않을까 염려한 것.
하지만 이런 생각은 기우에 불과했다. 지난주 브루나이에서 열린 셸 리뮬라컵 국제농구대회에서 만난 이들은 마치 친형제처럼 가까워 보였다. 처음으로 같은 팀에서 뛰고 있는 이들이 강한 개성과 자존심을 뛰어넘어 친해진 것은 노력의 결과.
문경은과 전희철은 경기 용인시에서 차로 5분 거리의 이웃이다. 예전에는 별로 왕래가 없었으나 한솥밥을 먹게 된 뒤부터는 집에서 1시간 거리인 체육관까지 전희철의 차를 타고 두 달 넘게 함께 출퇴근을 하며 진솔한 대화를 나눴다. 최근에는 중국 칭다오로 여행을 가 선수 생활 말년을 맞은 서로의 속마음을 털어놓았다. 10년 넘게 한국 농구를 대표하는 스타였던 이들은 어느덧 30대 중반에 접어들어 세월의 무상함을 느낀다. 그러면서 은퇴에 앞서 우승 한번 꼭 해 보자고 손을 맞잡았다. 도원결의라도 하듯.
2000년 한 차례 우승한 SK는 최근 4년 연속 플레이오프 진출에 실패했기에 이들의 어깨는 더욱 무겁다.
최근 전희철은 주장 자리를 문경은에게 넘겼다. 끈끈한 친화력을 지닌 선배가 후배들을 이끌고 자신은 훈련과 경기에 전념하겠다는 뜻. 문경은 역시 주장이 되면 코트 안팎에서 챙길 일이 많아지지만 후배의 뜻을 헤아려 흔쾌히 받아들였다.
정상을 향한 동반자가 된 문경은과 전희철이 어떤 결과를 낳을지 기대된다.
-반다르세리베가완(브루나이)에서-
김종석 기자 kjs0123@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