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만난 시중은행의 한 프라이빗 뱅커(PB)는 목이 쉬어 있었다.
서울 강남권과 경기 분당신도시, 일산신도시 등의 PB센터를 돌면서 연일 경기 성남시 판교신도시 2차 분양 청약전략에 대한 ‘족집게 강의’를 한 탓이다.
“강의는 1시간이지만 고객들의 질문에 대답하다보면 2시간을 훌쩍 넘기기 십상입니다. 요새 같아서는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랄 지경이지요.”
고객들은 대부분 금융자산이 최소한 3억 원 정도는 되는 사람들. 이들은 판교 2차 분양 전용면적 25.7평 초과 아파트의 분양가가 평당 1800만 원대로 예상보다 높게 책정된 데 대해 내심 반기는 표정이었다고 그는 전했다.
이 정도면 청약 경쟁률도 그다지 높지 않을 것으로 기대한다는 것이다. 판교의 40평형대 아파트를 계약할 때 드는 비용은 2억 원 이상. 서민들은 일찌감치 판교 입성을 포기했지만 PB 고객들에게는 큰 부담이 아니다.
높은 분양가 때문에 투자가치가 떨어졌다고 생각하지는 않을까?
“그렇지 않습니다. 2010년 개통될 신분당선 판교역과 분당 정자역은 지하철 한 정거장 차이인데 ‘분당의 청담동’으로 불리는 정자동 시세가 평당 3000만 원까지 되니까요.”
이 때문에 PB 고객들은 벌써 상당수가 판교 38평형을 청약할 수 있는 청약예금으로 갈아탔다는 후문이다. 2차 분양 6780채 중 38평형은 1254채로 물량이 가장 많아 확률이 높다는 것이다.
“분당 서현동 등에 50평형대 이상 아파트를 갖고 있는 고객들도 판교 입주 때까지 아파트를 팔지 않겠다고 합니다. 그동안 집값이 기대만큼 오르지 않아 팔아야 하나 고민했지만 앞으로는 오를 일만 남았다고 보거든요.”
판교 2차 분양에서 50평형대 아파트는 전체 물량의 5% 선에 그쳐 판교에 입주할 때쯤이면 분당의 대형 아파트 시세도 덩달아 오를 것이라는 계산을 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정부는 집값에 거품이 끼었다는 뜻으로 ‘버블 세븐’이라는 말을 만들어냈지만 버블 세븐 지역 중 하나인 분당의 시세를 기준으로 이번 판교 분양가를 정하는 모순을 범했다.
서민들까지 ‘덤빌’ 정도로 분양가를 낮게 잡으면 또다시 ‘판교 로또’라는 말이 나올까봐 그랬을까? 이번 분양가 책정이 부동산 거품과 함께 서민들의 상대적 박탈감을 더 키우지 않을까 걱정스럽다.
김유영 경제부 기자 abc@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