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거 알아? A형은 적극적이진 않지만 한 사람만 오래도록 사랑하고, B형은 자유분방하고 속박당하는 것을 싫어하고, O형은 로맨스를 중시하고 연애 상대에 집중하며, AB형은 우정에서 사랑으로 발전하는 연애 방식을 가졌고 정열적인 면에서는 약하대.’
언제부턴가 우리 사회에는 ‘혈액형’이라는 선천적인 특징이 그 사람의 연애관을 결정짓는 다는 믿음이 생겨났다.
각종 대중매체에는 위와 같은 내용의 혈액형 별 사랑 유형이 빠짐없이 오르고 있으며, 인터넷에서 혈액형 별 궁합을 찾는 것이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 됐다. 심지어 몇몇 결혼정보회사에서는 가능하면 A형은 O형과, B형은 AB형과 연결시켜 주기도 한다. 이렇게 남녀를 불문하고 혈액형은 사랑에 있어 어떤 중요한 요소인 것처럼 신봉되고 있다.
그렇다면 정말로 혈액형은 연애 태도에 영향을 미치는 걸까.
결론부터 말하면 ‘전혀 그렇지 않다’가 정답이다.
지난 30일 발간된 한국심리학회 사회 및 성격 심리학회지 20-3호에는 국내 최초로 혈액형별 사랑유형과 연애태도의 연관 관계를 조사 분석한 ‘혈액형이 사랑을 결정하는 요인이 될 수 있는가’(연세대학교 주현덕, 박세니)라는 논문이 실렸다.
논문에 따르면 혈액형과 연애태도 및 애정유형은 차이가 없었다. 대신 연애 경험이 많고 적음 혹은 남녀 성별에 따라 차이가 나타났다.
연구자는 서울 경기 지역 총 500여명에게 사랑 유형론에서 가장 유명한 LEE의 ‘사랑유형 척도’와 ‘연인으로서의 나 척도(MALPS)’(주현덕 2006)을 대입해 스스로를 평가하게 한 후 이원 분산 분석을 통해 결과를 도출했다.
그 결과 어느 혈액형이 더 정열적이거나, 친구 같은 관계를 선호하거나, 연애관계에서 보다 자유분방하다고 할 수 없었다. 또한 어떤 혈액형이 보다 더 다정하고 개방적이고, 포용적이거나 집중성이 높다고 할 수도 없었다. 즉, 혈액형이 사랑유형과 연애태도에서의 차이를 가져온다는 가설은 입증되지 않았다.
다만 남성이 여성보다 더 정열적이고, 헌신적인 편이고 반대로 여성은 사랑하는 데 있어 좀더 현실적인 것으로 나타났다. 연애 태도에 있어서도 남성이 자신을 여성보다 더 개방적이라고 평가했다.
또한 연애경험에 따라 사랑유형과 연애태도에서도 많은 차이가 나타났다. 연애경험이 많은 집단이 다른 집단에 비해 열정적이고 다정했으며, 반대로 연애경험이 없는 사람들이 더 친구 같은 사랑을 추구하거나 현실적이었다.
그러나 과학적인 입증 여부와는 별개로 사람들은 혈액형 유형론에 근거한 혈액형별 궁합이나 연애스타일을 받아들이고 의존하는 경우가 흔하다.
이에 대해 논문은 △사람들이 막연하고 일반적인 설명을 자신에게만 맞는 것으로 받아들이는 경향(바넘 효과) △자기가 믿고 싶은 정보만을 수용하고 그렇지 않은 정보는 회피하는 편향성(확인 편파) △혈액형이 네 가지로 나눠져 비교적 간략하고 △다른 사람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를 제공해 줘 통제감과 예측가능성을 준다는 점 △혈액형 별 궁합이 맞는지 틀린지 확인해 볼 다른 마땅한 수단도 없다는 점 때문에 이런 유형론이 인기를 얻고 있다고 분석했다.
연구자 주현덕 씨는 “비록 이 연구는 단일한 과정을 통해 제한된 결과만을 밝혔지만, 사이비 과학이 대중의 판단을 좌우하는 것에 대한 일침을 가하고자 했다”며 “보다 과학적이고 쉬운 심리 척도를 다양하게 제공해 일반인들이 현실에서 보다 나은 선택을 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심리학의 중요한 당면 과제”라고 밝혔다.
최현정 동아닷컴 기자 phoeb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