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규 국가정보원장은 8월 28일 국회에서 북한의 핵실험 가능성과 관련해 “핵실험을 위한 주변시설 등이 항상 준비상태이고, 기술적 능력도 100% 갖췄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결단만 있으면 가능성은 항상 열려 있다”고 밝혔다. 평양정권이 언제라도 핵무기를 손 안에 넣을 수 있다는 사실을 국가정보 최고책임자가 인정한 것이다.
김 원장의 국회 발언 2주일 전, 노무현 대통령은 광복절 경축사를 통해 “전시(戰時)작전통제권(이하 전작권) 환수는 나라의 주권을 바로 세우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이에 앞서 노 대통령은 “앞으로 남북 간 군사협상을 할 때도 한국군이 전작권을 갖고 있어야 대화를 주도할 수 있다”고 했다. 한국이 1953년 정전(停戰)협정의 당사자(미국 북한 중국)가 아니었기 때문에 한반도의 휴전상태를 평화상태로 전환하려면 전작권 문제도 정상화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논리적으로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이 논리에는 현재의 상황을 고려하지 않은 중대한 허점이 있다. 그것은 바로 국정원장이 밝힌 북의 핵실험 가능성이다. 북이 핵을 갖게 되면 ‘평화상태로의 전환’이란 헛말이 된다.
노 대통령은 2004년 11월 미 로스앤젤레스에서 북핵(北核)의 자위적(自衛的) 성격, 즉 핵은 ‘미제(美帝)의 공격을 방어하기 위한 수단’이란 북의 주장에 일리가 있다고 본다고 언급한 바 있다. 북의 입장에서 북을 보자는 내재적(內在的) 접근이다. 여기서 의문은 심각해질 수밖에 없다. 대통령이 국정원장에게서 북의 핵실험 가능성을 미리 보고받지 않았을 리 없다. 그런데도 그 문제는 제쳐두고 평화협정을 위해 전작권 환수가 필요하다고 했다. 북이 핵을 가져도 전작권만 가져오면 ‘평화상태로의 전환’이 가능하다고 본 것인가. 아니면 북핵에 대한 내재적 접근이 여전히 유효한 것인가. 대통령은 이 의문에 대해 국민에게 답할 수 있어야 한다. 답할 수 없다면 전작권 환수는 최소한 북핵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유보해야 마땅하다.
노 대통령은 그제 KBS와의 회견에서 “(전작권 문제는) 노태우 정부가 세운 계획에 따라서 하고, 김영삼 정부가 평시작전권을 환수하면서 2000년께까지 전작권까지 환수할 것이라고 계획을 세웠다”고 말했다. 왜 이제 와서 안 된다고들 난리냐는 것이다.
이에 대해 김대중 정부에서 국방부 차관을 지낸 박용옥 한림국제대학원대 부총장은 “1990년대 이후 한미 간에 한국 방어는 한국 주도 미국 지원, 지역 방어는 미국 주도 한국 지원이라는 전향적인 틀이 이루어졌다. 그 같은 틀에서 1994년 평시작전권을 가져오고 전작권도 가져오기로 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 후 YS 정부는 전작권을 가져와 봤자 실익(實益)도 없고 재원도 문제라고 판단해 사실상 추진을 유보했고, DJ 정부는 한미동맹 약화를 우려해 아예 말도 꺼내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때보다 상황이 더 나빠진 것은 분명하다. 한미동맹이 최악의 상태라는 것은 이미 뉴스가 아니며, 북은 ‘8년 햇볕정책’의 대가를 핵 위협과 미사일 발사로 답했다. 전작권을 환수해 한미연합방위체제가 공동방위체제로 전환되면 주한미군 주둔을 위한 비용 분담(cost sharing)은 전체 안보비용 분담(defence burden sharing)으로 성격이 바뀔 수밖에 없을 것이며, 그럴 경우 방위비 부담은 자동적으로 늘어날 것이라고 박 전 국방차관은 지적했다. 그러나 자주국방의 재원이 돼야 할 나라경제는 나아질 기미조차 없다. 이런 상황에서 “왜 내가 하겠다고 하니까 뒤집느냐”는 대통령의 항변(抗辯)은 오히려 억지에 가깝다.
‘평화를 위해 전쟁을 준비한다’는 역설(逆說)의 본질은 전쟁억지력에 있다. 그렇다면 전작권 문제의 초점도 전작권 환수가 전쟁억지력을 강화하는 데 효율적이냐에 모아져야 한다. 비효율적이라면 서두를 이유가 없다. 주권도, 자주도 전쟁억지에 실패하면 헛소리가 된다.
미국은 2012년까지 끌 게 뭐 있느냐, 2009년에 가져가라고 했다. 그러나 노 대통령은 책임도 지지 못할 ‘정책 실패’를 고집해서는 안 된다. ‘바다이야기’와는 차원이 다른 문제다.
전진우논설위원 youngj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