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족/그레고리 번스 지음·권준수 옮김/376쪽·1만3000원·북섬
일하지 않고도 돈을 벌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미국 신경과학자인 저자가 연구실에서 행한 실험 결과는 이 순진한 기대를 배반한다. 버튼을 눌러야 돈을 받을 수 있는 장치와 안 눌러도 받을 수 있는 장치로 실험을 했더니 공짜 돈을 받는 것보다 평범한 버튼 누르기를 할 때 실험 참가자들의 뇌에서 선조체가 더 활성화됐다. 뇌의 선조체 부위가 활발해지면서 도파민이라는 신경전달 물질이 다량 분비되면 인간은 만족감을 느낀다.
노동의 성과만큼 맛있는 것은 없다. 뇌는 나태해지는 것을 원치 않는다. 저자는 “선택이 주어진다면 심지어 쥐들도 공짜로 뭔가를 얻기보다 그들의 음식을 위해 일을 하는 것을 선호할 것”이라고 단언한다.
미국 에머리대에서 행동과학과 정신의학을 가르치는 저자는 만족감을 “자신의 행동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는 유일한 감정”이라고 정의한다. 이 감정은 쾌감과 다르다. 복권에 당첨되는 행운으로도 쾌감을 느낄 수 있지만, 만족감에는 어떤 일을 하겠다는 의식적 결심이 전제되어야 한다.
저자는 형이상학적 이론의 나열 대신 돈이 많으면 만족스러울까, 맛있는 음식을 얼마나 자주 먹어야 만족스러울까, 운동과 섹스는 만족과 어떤 관계에 있을까 등 구체적인 소주제를 통해 만족의 메커니즘을 설명했다.
만족감을 느끼도록 뇌에서 도파민 분비를 촉진하는 것은 ‘새로움’이다. 근본적으로 예측할 수 없는 세상에 살고 있기 때문에 우리의 뇌는 자주 새로운 놀라움에 자극받는다.
저자는 이를 직접 알아보기 위해 가느다란 호스를 입에 문 실험참가자의 혀에 쿨에이드(향긋한 음료를 만드는 혼합분말 상표)와 물을 불규칙적으로 뿜어 주면서 기능자기공명영상(fMRI) 촬영 기술로 뇌 영역의 혈액 변화량을 측정했다.
실험 결과 쿨에이드와 물 중 무엇이 나올지 예측할 수 없을 때 뇌의 선조체는 밝게 빛났다. 도파민은 예측할 수 없는 새로운 것에 반응한다. 또 무언가를 성취했을 때보다 그 이전, 즉 어떤 것의 성취를 기대하고 노력하는 과정에 있을 때 더 많이 분비된다.
사람마다 갖고 있는 도파민 신경세포의 양은 비슷하지만 사춘기 이후부터 꾸준히 줄어든다. ‘사용하지 않으면 퇴화한다’는 원리가 뇌에도 적용되는 것이다.
신경과학 이론의 소개에 그치고 말았다면 단조로웠겠지만, 다른 책들과 구분되는 이 책의 장점은 발로 뛰어다닌 저자의 취재에 있다. 저자는 직접 fMRI 기계의 스캐너 속에 들어가고, 요리사를 인터뷰하고, 퍼즐 토너먼트 대회에 참여했으며, 장거리 달리기 대회에서 의학 검진을 자원했다. 사람들이 어떻게 만족하며 사는지를 알려고 쿠바와 아이슬란드 여행을 했고 성(性)과 만족의 관계를 취재하러 사도마조히즘(SM) 클럽에도 다녀왔다.
통증을 통해 쾌락을 얻는 마조히즘(피학애·被虐愛)을 이해하려고 저자가 매사추세츠공대(MIT) 행동경제학자를 찾아가 실험 대상이 된 대목은 코믹하기까지 하다. 저자는 차가운 물이 순환되는 튜브복을 입은 뒤 팔에만 따뜻한 물을 흘려 보내자 팔의 느낌이 이루 말할 수 없이 좋아지고 팔에만 온 신경을 쏟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온통 팔에만 신경을 집중시키고 있다가 튜브복을 벗자마자 저자는 감탄한다. “이것이 바로 쾌락이다!”
통증과 쾌락이 뇌에 도달하는 생물학적 경로는 유사하며 마조히즘은 통증이 없는 상태에 대한 만족감을 지연시키기 위해 통증을 사용한다는 것이 저자가 ‘마루타’가 되어 발견해 낸 통증과 쾌락의 관계다.
심지어 저자는 오래된 관계에서 성적 만족감을 회복하는 방법을 탐구하다가 아내와 가진 색다른 섹스의 경험까지 소개한다. 독자의 책 읽는 즐거움을 빼앗지 않기 위해 그 방법을 여기서 공개하진 않겠다. 원제 ‘Satisfaction’(2005년).
김희경 기자 susann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