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든 제가 결론으로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우리가 비싼 수업료를 낸다고 생각하고 좀 인내해 주시면 다시는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확실하게 대책을 세우겠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이 지난달 31일 밤 방송된 KBS TV 특별회견에서 사행성 성인게임 ‘바다이야기’ 파문에 대해 “국민에게 너무 큰 걱정을 끼쳐 드린 데 대해 마음으로 사과드린다”면서 덧붙인 생뚱맞은 ‘수업료론(論)’이다.
▷이날 노 대통령은 1시간 동안 방송된 회견에서 웬만한 단편소설 분량보다 많은 200자 원고지 100장에 해당하는 말을 쏟아냈다. 그는 특유의 달변과 어법으로 각종 정책 실패의 책임을 야당과 국회, 그리고 언론 탓으로 떠넘기며 교묘하게 편 가르기를 시도했다. 국정의 최고책임자라기보다는 실패한 각종 정책을 변론하는 변호사처럼 보였다. “경제는 좋아도 민생이 어려울 수 있다” “코드인사(人事)는 책임정치의 당연한 원칙이다” “대통령도 낙하산이다”라는 말은 그의 어록(語錄)에 추가될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무능 코드들’이 엉켜 무슨 책임정치를 하겠나.
▷‘바다이야기’ 파문은 현 정권이 쓴 ‘게임산업 육성’이란 각본에 대통령 주변 사람들과 그 하수인들, 일부 정치인과 조직폭력배들이 주연과 조연으로 출연해 만들어 낸 ‘도박공화국’의 ‘부패 다큐멘터리’가 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의원내각제 국가라면 당연히 내각이 책임지고 총사퇴하고도 남을 사건이다. 그런데도 노 대통령은 대수롭지 않은 일로 치부하며 국민에게 수업료를 내는 셈 치라고 한다. 국민이 수업료를 내면 도대체 무엇을 얻을 수 있기에 그런 속 뒤집는 말을 하나.
▷국민은 이미 3년 반 동안 ‘민(民)을 섬긴다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는 정권을 선택한 대가를 톡톡히 치렀다. 대통령이 TV에 나와서 국민을 대하는 태도로 보아 앞으로 1년 반도 국민은 계속 마음이 상할 테고, 국민 정신건강 악화의 사회적 비용도 만만찮을 것 같다. 이 정권은 지지율이 10%대로 추락한 인과(因果)를 자성하기는커녕 국민을 희롱하듯이 어깃장을 놓고 있다.
권순택 논설위원 maypol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