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스 시계 회사 티소는 1915년 중저가 손목시계를 내놓아 폭발적 인기를 얻었다. 손목시계 대중화의 한 계기였다. 이에 앞서 오메가는 1899년 보어전쟁 때 회중시계를 손목에 묶고 다닌 영국군 장교의 에피소드에 착안해 1902년 손목시계를 만들었지만 너무 비쌌다. 초기의 손목시계는 여성용이 많았다. 남자들은 남자답지 못하다면서 사용을 꺼렸다. 독일 해군이 장교들에게 회중시계를 더듬지 말고 손목시계를 차라고 명령해 남자들이 손목시계를 차게 됐다는 설도 있다.
▷국내에서 대통령이나 권력 실세(實勢)의 이름이 새겨진 손목시계가 유행한 시절이 있었다. 야당 지도자들도 자신의 이름을 써 넣은 손목시계를 돌리곤 했다. 그런 손목시계를 차고 다니면서 유력자와 특별한 관계라도 있는 양 허세를 부린 사람도 있었다.
▷노무현 대통령은 민주당 대통령 후보 시절인 2002년 4월 30일 김영삼 전 대통령을 서울 동작구 상도동 자택으로 찾아갔다. 노 후보는 자신의 손목시계를 가리키며 “이 시계가 기억나실지 모르겠습니다. 총재님이 1989년에 일본 다녀오시면서 사다 주신 겁니다”라고 말했다. YS 덕 좀 보려고 과거 인연을 강조한 것이었다. 그러나 이 발언이 알려진 뒤 노 후보는 지역감정을 의식한 구태(舊態)정치를 한다는 역풍을 맞아 한동안 고전했다.
▷‘YS 시계’가 현 정권에 교훈이 되지도 못한 모양이다. 개혁의 전도사를 자처한 유시민 보건복지부 장관은 취임 후 자신의 이름을 새긴 3만3000원짜리 손목시계 100개를 돌려 반(反)개혁적 예산 낭비라는 비판을 받았다. 노 정부가 이른바 혁신사업을 한다며 쓴 809억 원의 국민 세금 가운데 수천만 원이 홍보용 손목시계 만드는 데 들어갔다고 한다. 지난해 법무부는 3840만 원을, 경찰청은 530만 원을 시계 구입하는 데 썼다. 혁신 동아리 및 직원 포상, 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 참석수당, 별정직 공무원 심사수당, 직원 승진 연수에도 혁신사업 예산이 집행됐다. 개혁이다 혁신이다 ‘무늬 좋은 소리’ 요란했지만 이 정부의 본질도 ‘홍보 시계’ 수준 아닌가.
권순택 논설위원 maypol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