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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화 이해하기 20선]세계화의 덫

입력 | 2006-09-07 03:01:00


《정치적 행동력의 재획득, 경제에 대한 정치의 우위를 재확립하는 것은 그런 의미에서 가장 중심적인 과제이다. 기존의 세력관계가 더 이상 유지되지 않으리라는 것은 충분히 예견할 수 있다. 세계시장의 압력에 대한 무분별한 적응은 기존의 복지사회를 불가피하게 혼란으로 몰아가고, 나아가 복지사회의 기초적 토양으로 기능하는 민주적 사회구조를 필연적으로 파괴할 것이다. ―본문 중에서》

‘세계화’는 우리의 삶을 행복하게 할 것인가, 그리고 그것은 과연 민주주의를 확대시킬 것인가? 이 책은 풍부한 예시를 근거로 자본과 노동이 처한 지금의 현실을 구체적으로 지적할 뿐 아니라, 세계화의 과정이 사회의 안정된 삶과 민주주의를 파괴할 것임을 비판적으로 이야기하고 있다. 그러한 점에서 이 책은 그리 무겁지 않은 필치에도 불구하고 단순히 시사적인 경제서를 넘어 이 시대에 대한 근본적이고 정치적인 통찰을 포함하고 있다.

이 책에 따르면, 세계화란 ‘범지구적인 경쟁의 격화’를 의미한다. ‘범지구적 경제의 통합’은 세계시장을 통해 생산성을 높여감으로써 ‘범지구적 경쟁의 격화’를 불러일으킨다. 높은 생산성 하에서 사회를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노동력은 20%에 불과할 뿐이며, 나머지 80%의 노동력은 배제된다. 그러므로 자본과 노동이 세계시장으로 편입되면 될수록 일자리가 생기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높은 생산성 하에서 실업율은 점점 더 높아진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저자들은 현재의 높은 실업율과 고용불안이 단순히 몇몇 나라의 일시적인 정책적 실패라거나 혹은 세계화가 아직 완전히 이루어지지 못해 생긴 일이 아니라, 바로 세계화가 만들어 낸 필연적인 경쟁 격화와 금융시장 독재의 구조적 귀결임을 말해주고 있다.

또한 이 책은 세계화의 과정이 범지구적인 ‘통합’을 가져오는 것이 아니라 ‘분열’과 ‘배제’를 가져온다고 지적한다. 주가지수와 기업이윤은 두 자리 숫자로 오르는 반면, 노동자들의 실질임금은 계속 내려가고 실업률과 국가의 재정적자도 심각한 수준으로 늘어난다. 그리하여 이렇듯 불안한 현실은 중산층을 소멸시키고, 불안한 삶에 대한 ‘공포’는 타인과 타민족에 대한 배제와 혐오로 선동되어 21세기의 ‘신 우익’을 만들어낸다는 것이다. 저자는 세계화를 외치는 시장자유주의자들이 신 우익집단에게 길을 열어주고 있는 현실을 그림으로써, 세계화의 귀결이 왜 민주주의에 반하는지, 왜 민주주의에 대한 공격을 의미하는지를 이야기하고 있다.

저자들은 ‘세계화’가 초래한 불평등한 구조를 지적하는 데에서 나아가, 사회의 안정된 삶과 발전 근거를 파괴시킨다는 데 그 근본적인 문제점이 있다고 지적한다. 세계를 돌며 이윤을 사냥하는 금융시장의 신자유주의 논리는 ‘국가’의 조정력을 무력화시키고 ‘정치’를 추락시킨다. 세계화의 과정은 개별국가의 정책집행력과 민주주의에 뿌리를 둔 안정된 사회생활의 기초를 부수고, 부의 재분배와 조정을 통해 사회적 불평등을 억제하고 사회적 결속을 이루어왔던 이제까지의 규칙(곧 민주주의!)은 그 근거를 잃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세계화’란 자기가 숨겨놓았으나 스스로 걸려들어 자신을 파괴하는 ‘덫’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세계화의 덫’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가? 이 책은 그 해법을 복지와 민주주의의 회복으로 제시한다. 그리고 이를 위한 근본적인 방향을 ‘경제’에 대한 ‘정치’의 회복, 국가의 조정능력 회복에서 찾고 있다. 국가와 민주주의를 무력화시키는 금융자본의 횡포를 세계화의 근본악으로 보는 저자의 입장에서 구체적인 방안은 주로 환경세의 신설, 사치세, 외환거래세나 금융세의 징수 등 세재개혁을 통한 금융과세로 제시된다. 하지만 이 책이 보다 근본적으로 강조하고 있는 것은 바로 이러한 개혁과 조정을 이루어낼 범지구적인 연대에 있다. 개별 국가의 노력만으로는, 개인의 노력만으로는 세계화로 인한 종국을 막을 수 없기 때문이다. 국가간의 연합, 시민사회의 국제적 연대, 살아있는 인간노동에 대한 재평가를 기초로 한 새로운 차원의 민주적인 연대와 연합이야말로 이 책이 제시하고 있는 핵심적 방향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박주원 서강대 학술연구 교수·정치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