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우리 사회는 전시작전통제권 단독 행사 문제와 관련해 극심한 혼란과 분열의 늪으로 빠져 드는 것 같다. 노무현 정부 출범 당시 외교 국방의 주역이 연이어 현 정부의 대미 대북 정책에 비판을 가하고, 안보 문제에 지금까지 침묵했던 각계각층의 지식인이 동참하고 나선 것은 결코 예사로운 일이라 할 수 없다.
7월 윤영관 전 외교통상부 장관은 “동맹 해체로 자주(自主)를 얻은들 고립되면 무슨 소용 있느냐”고 반문했고, 8월에는 김희상 전 대통령국방보좌관이 “전시작전권 환수에 따른 안보 위험성”을 경고했다.
조영길 전 국방부 장관도 4일 동아일보 기고를 통해 “신뢰를 상실한 동맹은 적보다 못하다”면서 현 정부의 연합사 해체 추진을 비판했다. 각계각층의 저명 지식인 700여 명은 5일 전시작전권 환수 추진 중단을 촉구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이들은 모두 노 대통령의 굴절된 ‘자주’ 개념, 친북 탈미 성향의 대외 정책, 전시 대비 개념이 결여된 평화 지상주의에 의해 초래될 한미동맹과 한국 안보의 장래를 우려하고 있다. 문제는 현 정부의 고위 당국자들이 과연 한미관계의 실태와 문제점에 관해 진실을 말하고 있느냐는 것이다.
첫째, 상호 신뢰성에 관해서다. 한미 군사 당국은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 한미연합방위체제의 발전적 변화 필요성에 공감해 왔다. 그간 양측은 변화의 기본 원칙으로서 한국 방위는 한국군이 주도하고 미군이 지원하며, 지역 차원의 문제는 미군이 주도하고 한국군이 지원하는 ‘역할 분담(role sharing)’ 개념을 공유하면서 돈독한 신뢰 관계를 유지해 왔다. 1994년 12월 1일부로 환수된 평시작전통제권도 그런 맥락에서다.
노무현 정부는 출범 당시부터 ‘한국군 주도’ 역할만 내세우고 지역 차원에서의 미군 주도 역할에 대한 한국군의 지원 역할은 아예 무시하는 자세였다.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과 관련한 노무현 정부의 부정적 자세가 예라 할 수 있다. 이는 유사시 동맹국 간 공조 의지를 일방적으로 무시하는 자세로서 상호 신뢰를 근본적으로 훼손하는 계기가 됐다고 할 수 있다.
둘째, 전시작전권 환수 이후 한반도 유사시 미국의 군사 협력 및 지원 보장에 관해서다. 외교 국방 고위 당국자들은 전시작전권 환수는 4가지 원칙을 토대로 하며, 미국과도 이미 합의한 상황임을 강조한다. 상호방위조약 유지, 주한미군 지속 주둔 및 미 증원군 파견 보장, 미 정보자산 지원 지속, 한반도 전쟁 억지력과 공동대비태세 유지를 선결 조건으로 한다는 것이다.
이런 원칙은 확고한 상호 신뢰가 전제될 때 현실화될 수 있다. 또 합의하는 문제와 합의 이행을 위한 조건의 충족 문제는 전혀 별개의 사안이다. 미국은 특정 조건의 충족을 전제로 유사시 군사 지원을 약속할 수 있다. 문제는 한국이 그 조건을 충족시킬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셋째, 전시작전권 단독 행사가 한반도 평화체제 협의를 위한 여건 조성에 도움이 될 것이냐 하는 문제다. 북한 평양방송은 8월 13일 “미국의 전시작전통제권 반환 놀음은 남조선에서 군사적 지배체제를 더욱 확대 강화하기 위한 책동”이라고 비난했다.
북한이 전시작전권 단독 행사와 관련한 우리 군의 전력 증강 노력을 가만히 보고만 있을 리가 없다. 전시작전권 단독 행사가 대북 협상 입지를 강화할 것으로 생각하는 것도 지나친 착각이라 할 수 있다. 지금까지의 남북 대화가 이를 말해 주고 있지 않은가?
정부 당국은 국민에게 솔직해야 한다. 노 대통령은 자신이 처음 임명한 외교 국방장관과 보좌관의 고언에 귀를 기울여야 하며, 현직 장관도 전임자의 충고를 진솔하게 받아들이고 대통령에게 직언해야 한다. 한미 간의 신뢰 회복도, 국민의 대정부 신뢰도 여기에 달려 있다.
박용옥 한림국제대학원대학교 부총장·전 국방부 차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