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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설수설/허승호]테크노 닥터

입력 | 2006-09-07 03:01:00


전풍일(63) 박사는 한국원자력연구소에서 36년간 근무하다 2년 전 퇴직했다. 한국형 경수로사업의 원자로 설계 전문가인 그는 국제원자력기구(IAEA)에 파견돼 10년간 원전국장을 맡을 정도로 이 분야의 권위자다. 그는 내주부터 원전 설계기술자문업을 하는 벤처기업 ‘GNEC기술사무소’에 출근할 꿈에 부풀어 있다. 정부 출연 연구소를 퇴직한 고급 과학기술인력과 기술이 필요한 중소기업을 짝짓기해 주는 ‘테크노 닥터’ 사업 덕분이다.

▷과학기술부가 7월 ‘테크노 닥터’ 사업 공고를 하자 “사람이 필요하다”며 신청한 중소기업은 282개사, “평생 쌓은 노하우를 활용할 기회를 달라”는 퇴직 과학자는 129명이었다. 이들이 ‘맞선’을 본 결과 79명이 새 직장을 얻게 됐다. 급여는 월 250만 원. 정부가 200만 원, 기업이 50만 원을 각각 부담한다. 다시 출근하게 됐다고 해서 마음을 놓아선 안 된다. 6개월 뒤 취업자들의 실적을 평가해 연장 여부를 결정한다. 한 사람이 정부지원금을 받을 수 있는 기간도 최대 3년이다. 국민의 세금이 들어가는 일이니 엄격한 관리는 당연하다.

▷외환위기 때 정리 해고된 대우자동차 근로자 중 한 사람은 복직 후 “시끄러운 곳에 가야 할 경우엔 휴대전화를 ‘진동’으로 해 양말 속에 넣어 뒀다”고 말했다. “혹시 걸려올지 모르는 ‘복직하라’는 전화를 놓칠까 봐 불안해서”였다고 한다. 복직이 얼마나 절실했는지, 퇴직 후 재취업이 얼마나 힘들었는지 짐작하게 하는 가슴 찡한 일화다.

▷우리나라 노동시장의 가장 큰 문제 중 하나는 고용유연성이 없다는 것이다. 재고용 시장이 취약해 한번 퇴직하면 재취업 기회가 거의 없다. 그래서 근로자는 ‘해고는 곧 죽음’이라고 생각한다. 해고가 어렵다 보니 기업은 고용 자체를 꺼린다. 노인 일자리 문제도 재고용 시장이 없어서 더 악화되고 있다. 정부의 노동정책도 ‘이념과 구호’에 매달리기보다는 이들이 다시 일할 수 있도록 하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 새 직장을 얻은 분들이 소명의식과 열정을 가지고 다시 한번 굵은 땀을 흘리기를 축원한다.

허승호 논설위원 tiger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