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훈구(57·사진) 서울 양천구청장이 유재운(50) 전 서울시의원에 이어 다른 사람에게 검정고시 시험을 대신 치르게 한 혐의로 검찰에 붙잡혔다.
이들 대신 시험을 치른 사람은 검정고시학원의 유명 강사로, 최소 3년간 정치인들의 대리시험을 치른 점으로 미뤄 이들 사이에 다리를 놓아 준 전문 브로커가 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검찰은 이 구청장 구속 수사 후에 정치인들과 최 씨를 연결해 준 전문 브로커를 찾는 쪽으로 수사를 확대할 계획이다.
▽정치인 추가 연루 의혹=서울남부지검 형사6부(부장 신동현)는 6일 이 구청장에 대해 위계에 의한 공무집행 방해 및 공문서 위조 혐의로 사전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이 구청장은 지난해 8월 치러진 고졸 검정고시에서 서울의 한 검정고시학원 강사인 최모(54·구속) 씨에게 시험을 대신 보게 한 혐의다.
최 씨는 이 구청장의 검정고시 응시원서에 자신의 사진을 붙여 시험을 치른 뒤 대가로 300만 원을 받은 혐의다. 검찰은 이 구청장이 지난해 4월 합격한 고입 검정고시도 최 씨가 대신 치른 것으로 보고 있다. 이 구청장이 “고입 검정고시는 내가 봤다”고 주장하지만 당시 답안지의 필적이 최 씨의 것과 유사하다는 것.
앞서 유 전 의원도 최 씨에게 대리시험을 부탁해 2003년 4월 고입 검정고시를, 같은 해 8월 고졸 검정고시를 통과했다. 최 씨는 이때도 합격 대가로 각각 300만 원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4일 의원직을 사퇴한 유 전 의원은 검찰이 사전구속영장을 청구하자 잠적했다.
유 전 의원과 이 구청장은 2002년 7월부터 올해 6월까지 함께 서울시의원을 지냈다. 고졸 검정고시에 합격한 뒤에는 나란히 K대에 진학했다.
▽“대리시험 식은 죽 먹기”=서울대 출신인 최 씨는 검정고시 응시생들 사이에선 꽤 알려진 인물. 이 때문에 최 씨는 자신의 수업을 들은 학생이 함께 응시할 경우 대리시험 사실이 탄로 날 것을 우려해 서울 대신 인천에서 시험을 봤다.
그렇다 해도 수년에 걸쳐 대리시험을 치른 그가 한 번도 적발되지 않은 점은 의문으로 남는 부분. 고시장에선 응시원서와 응시생의 신분증을 비교해 사진과 주민등록번호를 확인하는데, 최 씨는 응시원서에 자신의 사진을 붙이고 주민등록번호는 대리시험을 부탁한 정치인의 것을 기록했다.
서울의 한 검정고시학원 관계자는 “검정고시에선 주민등록번호까지 꼼꼼히 살피지 않기 때문에 대리시험을 보려고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이 구청장은 누구?=이 구청장은 목동이 서울로 편입되기 전인 경기 김포군 양동면 목동리 시절 이곳에서 태어난 토박이. 두 살 때 아버지를 여읜 뒤 홀어머니 밑에서 성장한 그는 가난 때문에 중학교를 중퇴해야 했다.
토박이로 지역 사정에 밝았던 그는 지인들과 함께 건설회사를 차려 연립주택 등을 분양하는 부동산 사업을 해서 돈을 모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지방자치제가 부활되면서 구의회 의원직에 도전해 1, 2, 3대 양천구의회 의원에 당선됐으며 6대 서울시의회 의원을 거쳐 5·31지방선거에서 한나라당 후보로 출마해 구청장에 당선됐다. 이 구청장의 소식을 들은 양천구 직원들은 “향후 4년간 구정을 구상해야 할 중요한 시기에 이런 일이 터졌다”며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
성동기 기자 espri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