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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향, 왜 그리 빨리 갔어? 나 너무 외로워”

입력 | 2006-09-08 03:00:00

스튜디오에서 함께 작업을 하고 있는 40대 때의 운보 김기창 부부. 사진 제공 운사회


“우향을 잊어 보려고 연애 아닌 연애를 위해 상대자를 찾어(아) 헤매기도 했어요.”

“어느 때는 왜 갓써(갔어) 너무 빠르잔(잖)아? 너무 외롭고 고독하고 이런 걸 어따(어디에) 의지할지 몰라서 여러 명의 여자친구와 사귀기도 했지만 우향만 한 여인을 못 맛(만)나서.”

운보 김기창(1913∼2001) 화백이 먼저 세상을 떠난 부인 우향 박래현(1920∼1976)에 대한 그리움을 담은 필담이 처음 공개됐다. 30여 년을 함께 살았던 부부 화가의 금실은 생전에 “남성미가 대단했던 남편과 똑똑한 아내로, 가장 모범적인 부부였다”(이구열 한국근대미술연구소장)고 문화계에 알려질 정도였다.

청각 장애를 가진 운보는 수화나 필담으로 대화를 나눴다. 이번에 공개된 필담은 우향이 세상을 떠난 지 8년 뒤인 1984년 2월 이 소장과 나눈 것. 이 소장이 보관해 온 필담지는 13∼22일 서울 종로구 인사동 갤러리 상(02-730-0030)에서 열리는 운보 5주기 추모기념전 ‘한국화-근원과 확산’에서 선보인다.

이 소장은 “우향에 대한 속마음을 털어놓을 때 필담 글씨가 더욱 빨라지고 너털웃음을 터뜨리곤 했던 고인의 모습이 생생하다”고 회고했다.

운보는 좌익으로 몰려 마음고생이 심했던 우향에 대한 안타까움도 털어놓았다.

“우향은 참 억울한 생애였어요. 나 때문에. 그녀는 좌익 계열을 극력 반대하고도 오해로 일관. 운보의 모든 일거수이거족이 다 뒤에서 우향이가 시킨 걸로 오해 사서 평생 맘 놓고 하루도 지내지 못햇(했)어요. 가여운 여인.”

이 소장은 “운보는 광복 직후 좌익미술단체에서 활동한 전력 때문에 부역자로 몰렸다가 스승인 김은호 선생 덕분에 구명됐다”며 “운보가 말을 못하니 우향이가 모두 시켰을 것이라는 주위의 비난을 받자 이를 가슴 아프게 여긴 것”이라고 설명했다.

추모전은 운보 선생의 제자들 모임인 운사회(회장 이영복)가 마련한 것으로 운보의 작품 20여 점과 제자들의 작품을 선보인다.

허 엽 기자 he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