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진 지 35년 만에 유골로 고국 땅을 밟은 재일동포 송화남 씨의 일본인 아내 아시리 레라 씨(오른쪽)가 6일 오후 경기 고양시에서 남편에 대한 송영식을 연 뒤 제사용 ‘쑥인형’을 태우고 있다. 쑥인형은 송 씨의 영혼을 상징한다. 고양=이훈구 기자
6일 오후 3시 경기 고양시 덕양구 지축동 행위예술가 무세중 씨의 집. 북한산을 바라보는 그의 집 마당에서 특별한 송영(送迎)식(영혼을 불러 한을 풀어 주는 의식)이 열렸다.
송영식의 주인공은 송화남 씨. 그는 1937년 강제징용자인 부모 사이에서 태어나서 일본 소수민족인 아이누족 가정에서 성장했다.
일본 홋카이도(北海道) 지역 탄광에서 일한 그의 부모는 일본군의 핍박을 피해 인근 아이누족 부락으로 도망갔다가 학살당했다. ‘송화남’이라는 글자가 수놓인 배냇저고리를 입은 갓난아이는 아이누족 여인이 거둬들였다.
의식은 제문 낭독으로 시작됐다.
“재일동포 송화남 씨의 유골이 35년 만에 한국에 왔습니다. 그의 아내 아시리 레라(60) 씨가 그의 유골을 안고 제를 올립니다.”
아이누족 여인인 아시리 씨는 제문을 읽는 중간중간 가슴에 손을 얹고 이따금 흐느꼈다. 송영식에는 아시리 씨의 일본내 지인, 무 씨와 연결해 준 한국인 등 20여 명이 모여 무 씨의 지시에 따라 제단에 절을 올리고 기도를 하며 송 씨와 그의 부모를 추도했다.
한국식 송영식에 아이누족 전통 춤인 ‘활춤’과 전통 노래가 곁들여졌다. 쑥으로 만든 영혼인형을 태우자 때마침 불어온 바람에 솟대가 짤랑거렸다. 아시리 씨는 “철저한 아이누족으로 살다간 남편이 1971년 34세 때 교통사고로 죽기 전 ‘조국에 가고 싶다’고 몇 차례나 이야기했다”고 말했다.
경제 사정으로 미룬 한국행 꿈을 지인들의 도움으로 35년 만에 이뤘다.
아시리 씨는 일본 내 유명한 세습 무속인. 아이누족은 영감이 뛰어난 민족으로 유명하다.
그는 “남편의 유골이 조국에 뿌려져 그와 그 부모의 설움이 조금은 달래졌을 것”이라고 했다. 훗카이도 지역은 아이누족의 주 근거지이자 많은 조선인 강제징용자가 희생된 곳이다.
현재 홋카이도에는 아이누족과 강제징용된 조선인 사이에서 태어난 2, 3세대 수백 명이 살고 있다고 한다.
아시리 씨는 “당시 조선인이 일본군 학대를 피해 아이누족에게 오는 경우가 많았다”며 “척박한 홋카이도 지역에서 도망칠 곳이 막막할 때 아이누족이 그들을 따뜻하게 맞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 설 기자 snow@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