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창원시에 있는 A사는 신발에 쓰이는 섬유 제조업을 하고 있다. 연 매출은 10억 원 남짓으로 비교적 영세한 중소업체다.
이 회사가 한 달에 내는 법인세 등 ‘공식’ 세금은 200만 원 선이다. 그러나 각종 부담금과 보험금, 회비 등 의무적으로 납부해야 하는 준조세(準租稅)는 갑절인 400만 원에 이른다.
우선 ‘국민연금 건강보험 고용보험 산재보험’ 등 4대 보험료가 한 달에 약 300만 원이나 되고, 이익단체인 유관 업종 협회 회원비도 꼬박꼬박 내야 한다. 때에 따라서는 A사 제품을 사 가는 대기업이 참가하는 전시회에도 협찬금을 ‘상납’해야 한다.
이 회사 장모(61) 대표는 “준조세성 경비가 너무 많이 들어가 공장을 해외로 옮길 생각도 여러 번 했다”고 털어놨다.
이렇게 각종 준조세에 ‘등골이 휘는’ 중소기업을 위한 은행 대출 상품이 나온다. 기업은행은 7일 “중소기업들이 세금 외에 부담해야 하는 각종 준조세가 많아 경영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이들 기업을 지원하기 위한 저(低)금리 대출 상품을 올해 안에 선보일 계획”이라고 밝혔다.
대출을 원하는 중소기업은 최근에 납부한 준조세 내용과 영수증을 은행에 제출하면 된다.
은행 측은 대출 신청기업 중 준조세 부담이 크다고 판단하는 기업에는 대출금리를 연 0.5%포인트 깎아 주겠다는 방침이다.
이 같은 ‘준조세 론’은 국내 대출상품으로는 처음이고, 세계적으로도 드문 대출상품이 될 전망이다.
기업은행 관계자는 “이것이 우리의 현실”이라며 “실제 기업현장을 돌아보면 중소기업인들이 각종 준조세에 무척이나 힘들어 한다”고 했다.
준조세는 법에 근거한 조세가 아니기 때문에 조성이나 운영이 비교적 쉽고 기업에 불필요한 자금 부담을 줘 원가 상승 요인으로 작용한다는 지적이 많다.
최근 한국조세연구원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기업들이 부담하는 부담금과 수수료 등 연간 준조세는 각종 보험료를 제외하고도 약 10조 원에 이르렀다.
올해 3월 기업은행이 거래 실적이 우수한 중소기업 최고경영자(CEO) 400명을 상대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 시급히 개선해야 할 규제 분야로 응답자의 60.4%가 ‘세제 및 준조세’를 지목했다.
중소기업중앙회가 7월 270개 중소 제조업체를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도 절반가량(49.1%)이 “준조세가 경영에 큰 부담이 된다”고 답했다.
유재동 기자 jarret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