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 한 달치 수업 지도안을 정리해서 제출해주세요."
"일주일치도 아니고 한 달치라니…."
일순 조용해진 교무실 곳곳에서 한숨이 새어나왔다.
"선생님들은 아이들 학습지도에만 '올인'(다걸기)해 주세요. 잡무는 과감히 줄이겠습니다."
일부 교사는 지시를 거둬달라고 하소연하기도 했지만 김동섭(60) 교장은 완강했다.
김 교장은 지난해 3월 서울 양천구 목동 영도초등학교에 부임했다. 그는 "실력 있는 교사가 알찬 수업을 해야 교실이 살아난다"면서 교사들을 설득하기 시작했다. '사교육 1번지' 에 있는 학교가 사교육을 줄일 수 있을 정도로 수준 높은 교육을 해야한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영도초교는 학력 신장을 목표로 한 교실 수업 개선 작업을 2년째 벌이고 있다.
1학년 담임 박영주(여·46) 교사는 일거리를 들고 퇴근하기 일쑤다. 학교 전체에 야간 보안장치가 작동되는 오후 8시까지 일을 마무리하지 못하는 날이 많기 때문이다.
"한 달치 수업지도안을 만들어 같은 학년 담임끼리 1주일에 3, 4차례 워크숍을 해요. 동료 교사의 지도안에 대해 평가하고, 아이디어를 공유하는 자리죠."
교사의 학습지도안은 교장, 교감의 손길과 동료 교사와 토론을 거치면 더욱 정교해지고 풍부해진다.
영도초교는 올해부터 전 학년이 똑같은 시험을 같은 날 치르지 않고 학급별 평가를 실시하고 있다. 학기 초 담임 교사들은 시험 과목과 일시, 횟수 등을 학교에 적어낸다. 최소 2번 이상 시험을 치러야 하는데 4번이나 치르는 반도 있다.
김 교장은 "성적을 학년별로 한 줄로 세우길 좋아하는 학부모도 있지만 학생이 부족한 점을 알아내 그 부분을 중점적으로 가르치는 게 효과적이어서 학급 평가 방식을 도입했다"고 말했다.
학급 평가는 객관식 대 서술형 문제의 비율이 7대 3이다. 담임 교사가 난이도에 따라 문제마다 배점도 달리한다. 학급별 문제는 공개되기 때문에 교사들은 정성껏 문제를 출제하고 서로 배울 기회를 얻는다.
6학년 김예진(12) 양은 "반에서 치르는 시험은 서술형이 많아 훨씬 어렵다"며 "담임 선생님이 모든 문제를 출제하기 때문에 아이들이 예전보다 수업을 집중해서 듣는다"고 말했다.
이 같은 시도는 학부모의 전폭적인 신뢰와 지원 때문에 가능했다.
자원봉사자로 나선 학부모 30명은 수업 자료를 만들어서 교사들에게 제공한다. 교사들은수업 자료를 제작할 시간에 지도안을 만들고 수업을 준비한다.
학습자료지원도우미인 학부모 이현경(39·여) 씨는 "유명 학원의 강사 이상으로 열심히 수업을 준비하는 선생님의 모습을 보며 학교에 믿음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영도초교 교사 전원은 지난 여름방학 때 부족한 점을 보완하기 위해 자율적으로 연수를 신청했다. 학기 중에는 일상적인 수업 준비 때문에 할 수 없었던 연구로 무더위를 날린 셈이다.
이 학교 교사들은 대개 오후 7, 8시경 퇴근한다. 이 때문인지 영도초교는 교사들이 기피하는 학교가 됐다는 말도 들린다.
하지만 김 교장은 오후 5시면 교문을 나선다. 일이 빨리 끝난 선생님들이 일찍 퇴근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그는 "교사가 스스로 열심히 하는 분위기를 만들고 싶어요"라고 말했다.
김 교장은 이전 학교에서도 4년간 교실 수업 개선 작업을 벌였지만 자신이 이임하자 유야무야된 현실이 가끔은 서글퍼진다.
신수정기자 crystal@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