걱정이 많은 아이 빌리(위 그림)와 빌리 같은 아이들을 위해 만들어진 ‘걱정 인형’. 작가는 걱정 인형을 들어 보여준 할머니 손에 경륜 가득한 잔주름까지 놓치지 않고 세밀하게 묘사했다. 그림제공비룡소
◇겁쟁이 빌리/앤터니 브라운 글 그림·김경미 옮김/32쪽·8500원·비룡소(5세 이상)
애들도 걱정이 많다. 아껴둔 케이크를 동생이 몰래 먹어 치울까 걱정이고 퇴근 시간이 늦어지는 엄마를 기다리며 유치원 준비물을 못 챙겨 갈까 걱정이다. “거짓말하면 코가 길어진다”는 동화에 겁을 먹고 “늦게 자면 눈썹 하얗게 센다”는 아빠의 위협에 되레 눈망울이 말똥말똥해진다.
빌리는 이보다 한 수 위다. 그래서 ‘겁쟁이’ 빌리다. 특히 잠자리에 들기 전엔 더욱 심해진다. 벗어 둔 신발이 잠자는 사이 또박또박 걸어 도망가지 않을까, 비가 오면 침대까지 물이 차오르지 않을까, 날카로운 초승달이 뜨는 날 큰 황새가 날 물어가 버리지 않을까.
어느 날, 집을 떠나 할머니 집에서 자게 된 빌리, 그래서 걱정이 더 많아진 빌리. 바보 같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할머니께 말씀드리지 않을 수 없다. 역시 할머니 손이 약손이다. “참 재미있는 상상이로구나. 나도 너만 했을 때는 걱정을 많이 했지” 하고 빌리를 안심시킨 뒤 ‘걱정 인형’이라는 확실한 해결책까지 제시한다.
걱정 인형은 중앙아메리카의 과테말라에서 처음 생겼다고 한다. 어른 손가락 한 마디 크기의 나뭇조각과 자투리 천으로 알록달록하게 만들어 아이들의 베개 아래 넣어 두면 아이들의 걱정을 대신 해 준다는, 그래서 아이는 편안하게 잠을 잘 수 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빌리는 할머니가 주신 여섯 개의 알록달록 걱정 인형에게 온갖 걱정을 다 이야기한 뒤 깊게 잠든다. 다음 날에도, 또 그 다음 날에도 계속 푹 잔다. 그런데 새로운 걱정거리가 또 생겼다. 빌리의 걱정을 떠넘겨 받은 인형들이 불쌍해서 또 걱정하기 시작한다! 못 말리는 빌리, 그러나 빌리는 또다시 좋은 생각을 해내고….
‘고릴라’로 유명한 앤터니 브라운의 그림은 더는 말이 필요 없다. 때 묻은 걱정으로 머릿속이 복잡한 어른들도 잠시 환상적인 그림에 빠져 웃게 만든다.
단추 꼭꼭 채워 입고, 양말 반듯하게 당겨 신고, 머리카락 한 올 흐트러지지 않았던 소심한 빌리. 인형들 덕분에 걱정을 훌훌 벗어 던진 빌리의 자유롭게 흐트러진 머리와 시원스럽게 내려간 양말을 꼭 챙겨 보시라.
이진영 기자 ecol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