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전사 딸린 고급 승용차, 넓은 사무실과 여비서, 억대 연봉에 마르지 않는 판공비…. 회사 내 서열이 대체로 사장 다음의 ‘넘버 투’로 꼽히지만, 큰 책임 지지 않고 빠져나갈 수 있다. 더우면 에어컨 잘 나오고, 추우면 난방 잘 되는 창가에 앉아 꼬박꼬박 졸아도 간섭하는 사람도 없다. 공기업 감사(監事) 자리다. 보통사람들은 이런 복 받은 자리에 침 흘릴 엄두도 못 낸다. 하지만 정권에 투기(投機) 잘한 덕에 낙하산을 타고 공기업 감사나리로 변신한 준(準)건달이 적지 않다. 이른바 운동권 출신도 꽤 있다.
▷한나라당 정진섭 의원이 정부 산하 69개 공기업 상임감사의 급여를 조사했더니 41명이 억대 연봉을, 많게는 4억8540만 원(산업은행)까지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2000년 이후 5년 사이 공기업 감사의 평균 연봉은 78% 올랐다. 공무원 봉급 인상률의 2.6배, 근로자 임금 평균인상률의 1.8배다. 노무현 정부가 산하기관에 떨어뜨린 낙하산 임원은 325명이고, 이 가운데 88명은 감사다. 기획예산처가 14개 공기업의 2005년 경영실적을 분석했더니 낙하산 인사가 많은 조직일수록 경영실적이 나쁜 것으로 평가됐다.
▷감사의 역할이 중요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이사와 경영진에 대한 적법성 감사, 재무활동의 건전성과 타당성 감사, 외부감사인(회계법인)의 감사활동에 대한 평가 등 업무가 묵직하다. 그만큼 전문성과 도덕성이 있어야 하는 자리다. 그런데 경영의 기초자료인 대차대조표조차 이해(理解)하지 못하는 사람이 낙하산으로 내려가 앉기도 한다.
▷노무현 대통령은 지난달 일부 신문사 간부들에게 “공기업 기관장들이 말을 잘 안 듣는다. 우리가 외부 감사를 임명하는 것도 (이런 기관장에 대한) 견제의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공기업 기관장들은 누구의 말을 잘 들어야 하는 것인가. 기업경쟁력을 극대화해서 국민의 부담을 줄여 주면서, 나라경제에 기여하는 것이 이들의 임무다. ‘정권 코드’의 낙하산 감사들은 기관장의 이런 역할을 도울까, 방해할까.
권순택 논설위원maypol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