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낮 서울지하철 1호선 종각역 종각지하상가에서 긴급 대피 방송이 나오자 시민들은 혼비백산했다.
상인들은 오전부터 머리가 어지럽고 속이 메스꺼웠다고 말해 가스 유출이 5시간가량 계속된 것으로 보이지만 지하상가 관리사무소는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다.
종각지하상가에선 최근 한두 달 사이에 냉난방기가 4, 5차례 고장 났으며 사고 당일인 8일 오전에도 이상이 있어 수리를 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긴박했던 당시 상황=당시 사고 현장에 있었던 상인들의 말을 종합해 보면 가스가 흘러들기 시작한 시간은 오전 11시경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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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품 매장의 점원인 김모(35·여) 씨는 “오전 11시경 출근을 했는데 약간 어지러웠다”며 “오후 2시가 지나자 물체가 흐릿하게 보이고 식은땀이 났다”고 말했다.
지하 2층 기계실 바로 위 지하 1층 옷가게에서 일하는 강모(25·여) 씨는 “점심을 먹은 뒤 속이 좋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오후 3시경 소화가 되지 않아 구토를 하려고 화장실에 갔다가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
종각역 근처 C약국 관계자는 “오후 2시경 지하상가에서 일한다는 한 여성이 찾아와 속이 계속 울렁거린다고 해 청심환을 줬다”며 “오후 3시가 넘자 똑같은 증세를 호소하는 손님이 줄을 이었다”고 말했다.
이처럼 이상 증세를 보이는 사람들이 잇따르자 상인 몇 명이 상가 관리사무소에 원인을 문의했다.
하지만 관리사무소에선 “냉방기에 이상이 있는 것 같다”고 말했지만 특별한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상가번영회에선 오후 3시 50분경 “상인들은 교대로 밖에 나가 바람을 쐬고 오라”는 안내 방송만을 내보냈다.
이 방송이 나간 뒤 상인들이 잇달아 의식을 잃고 쓰러지자 오후 4시 반경 관리사무소는 “위급 상황이 발생했으니 빨리 대피하라”는 긴급 방송을 했다. 하지만 이미 60여 명이 호흡곤란을 호소한 뒤였다. 이들은 구조대의 도움으로 인근 병원으로 옮겨졌다.
대피 방송이 나간 뒤 지하상가에 있던 700여 명이 가까운 출입구로 몰려들면서 큰 소동이 일었다.
▽대형 참사 날 뻔=오후 4시 13분경 출동한 소방 당국이 출동 직후 지하상가 내 일산화탄소 농도를 측정한 결과 환경부 기준치(10∼25ppm)의 10배에 가까운 225ppm이 검출됐다. 한국가스안전공사에 따르면 800ppm의 일산화탄소를 45분간 흡입하면 2시간 내 실신한다.
지하상가의 일산화탄소 농도는 냉난방기를 멈춘 뒤 오후 5시 반경이 돼서야 기준치인 20ppm으로 떨어졌다.
일부 상인은 3, 4일 전부터 두통과 메스꺼움 증세가 나타났다고 말했다. 이들은 “관리사무소가 제때 대처하지 않고 계속 냉난방기를 가동해 피해를 키웠다”고 주장했다.
김문택 한국가스안전공사 사고조사처 차장은 “이곳 냉난방기는 최근 한두 달 사이에 4, 5차례 고장이 난 데다 이날 오전에도 기계 결함이 생겨 수리를 받았다”고 밝혔다.
김 차장은 또 “이 지하상가의 냉난방기를 작동하면 일산화탄소 등 폐가스가 자연적으로 발생하고 이 가스가 제대로 배출되지 못하면 가스 유출 사고는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지하철 1∼4호선에 있는 지하상가 30곳에서 모두 종각지하상가와 같이 LNG를 이용한 흡수식 냉난방기를 사용하고 있어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현장 조사에 나선 서울메트로 관계자는 “지하상가에 들어서자마자 머리가 어찔했다”고 말해 구조가 조금만 늦었다면 대형 참사가 될 수도 있었다.
사고가 난 종각지하상가에는 모두 86개의 점포가 있다. 연면적은 1429평으로 축구장 절반 크기다.
1979년 12월 문을 연 지하상가는 2003년 12월 리모델링을 했다. 냉난방기도 당시 새로 설치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지하상가에서 속옷상점을 운영하는 주모(52·여) 씨는 “리모델링을 한 뒤 오히려 실내에 먼지가 더 많아졌다”고 말해 리모델링 과정에서 통풍에 문제가 생긴 것 아니냐는 의혹을 낳고 있다. 통풍시설이 제대로 작동됐다면 이처럼 큰 사고가 일어나지 않았다는 게 상인들의 주장이다.
이 설 기자 snow@donga.com
임우선 기자 imsun@donga.com
최우열 기자 dnsp@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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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산화탄소 유출지점 놓고 논란
소방당국과 서울시 시설관리공단은 지하철 1호선 종각역 종각지하상가 가스 누출 사고의 원인을 모두 냉난방기 작동과정에서 발생한 일산화탄소가 상가 내부로 스며들었다고 보고 있다.
병원 측도 환자들의 상태를 ‘일산화탄소 중독’이라고 진단했다.
그러나 일산화탄소가 어디에서 유출됐는지에 대해서는 양측의 의견이 다르다.
경찰과 소방당국은 액화천연가스(LNG)를 사용하는 흡수식 냉난방기가 과열되면서 발생한 일산화탄소가 바깥, 즉 지상으로 배출되지 않고 지하상가 내부로 유입됐기 때문이라고 추정했다. 지하상가 근처에 대량으로 일산화탄소가 배출될 만한 시설은 흡수식 냉난방기밖에 없기 때문.
냉방기는 냉장고처럼 액체가 증발할 때 주위에서 열을 빼앗는 증발열을 이용한 원리로 프레온가스 같은 냉매(냉동효과를 높여주는 것)를 사용한다. 냉매로 차가워진 물에 바람을 불어넣으면 찬바람이 되고 이는 냉방통로를 통해 상가 전체로 퍼진다. 난방기는 반대로 열을 가해서 물을 뜨겁게 한 뒤 바람을 불어넣어 뜨거운 바람을 확산시킨다. 이 과정에서 불완전연소가 이뤄지면 일산화탄소가 발생한다.
시설관리공단은 현재로서는 냉난방기에 이상이 없다는 주장이다. 정인준 공단 상가경영팀장은 “사고 당시 기계실에 근무하던 직원은 아무런 이상이 없었다”며 “만약 냉난방기에서 일산화탄소가 유출됐다면 기계실 직원이 가장 먼저 쓰러졌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공단 측은 냉난방기를 매일 점검하고 있고 사고 당일인 8일 오전에도 점검한 결과 아무 이상이 없었다고 밝혔다.
또 냉난방기가 있는 기계실에는 LNG 누출을 탐지하는 가스누출경보기가 있는데 사고 당시 경보가 울리지 않았다. 공단 측은 사고 직후 가스안전공사 직원이 조사를 했지만 경보기가 정상적으로 작동하고 있었다고 밝혔다.
성동기 기자 esprit@donga.com
황태훈 기자 beetlez@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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