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서초구 잠원동 신동초등학교 3학년 7반 교실 교단 앞에서 정양선 교사(오른쪽)가 상을 펴놓고 아이들에게 보충공부를 시키고 있다. 수업 시작 전 진단평가를 치른 뒤 아이들 스스로 채점해 보충학습을 할지, 심화학습을 할지를 결정하게 하는 것이 인상적이다. 홍진환 기자
《“선생님하고 ‘보충공부’를 하고 싶은 사람은 앞으로 나오세요.” 서울 신동초등학교 3학년 7반 정양선(45·여) 교사가 잔칫날에나 볼 수 있는 큰 상을 교단 앞에 펼치자 손에 연필과 공책을 든 아이들이 속속 상 앞으로 모인다. 학생들은 본수업이 시작되기 전에 치른 진단평가에서 틀린 문제가 있거나 모르는 내용이 많으면 보충공부를 한다. 보충공부의 기준은 없다. 학생 스스로 결정한다. 그래서일까. 보충공부를 하는 아이들은 부끄러워하지 않고 당당하다. 강나리(9) 양은 “잘 모르는 부분을 선생님하고 같이 공부하는데 뭐가 창피해요. 모르는 데도 아는 척하는 게 더 바보 아닌가요”라고 반문했다. 》
국어시간은 보충학습과 심화학습을 하는 두 그룹으로 나뉘어 진행됐다. 심화학습을 하는 아이들은 정 교사가 준비한 심화학습지를 풀면서 모르는 부분을 질문했다.
서울 서초구 잠원동 신동초등학교는 지난해 3월 평가방법 개선 연구학교로 지정된 이후 학교 분위기가 확 달라졌다.
고석완(62) 교장은 “학력을 신장하려면 학생의 성취 수준을 정확히 측정한 뒤 개별 학생의 부족한 점을 어떻게 보완해 주고 피드백해 주느냐가 중요하다”며 “수업 내용은 아이의 수준에 따라 달라진다”고 말했다.
교사들은 방학 때 수업시간에 쓸 학습지를 만드는 데 매달린다. 학기 중에는 수업시간마다 다양한 수준의 학습지를 만들 시간을 내기 어렵기 때문이다. 수학처럼 학생별 수준 차가 큰 과목은 세 그룹 이상으로 나눠 수업해야 하기 때문에 사전 준비는 필수다.
이 학교의 ‘평가예고제’도 학부모들에게서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매달 보내는 가정통신문에는 한 달간 과목별로 실시하는 수행평가 내용이 담겨 있다.
3학년생 학부모 송영지(38·여) 씨는 “처음엔 학부모의 극성 때문에 아이들끼리 경쟁심만 부추기지 않을까 걱정했다”면서 “학교가 어떤 부분을 평가하는지 정확히 알기 때문에 아이가 진도에 맞춰 스스로 공부하는 습관이 생겨 너무 만족스럽다”고 말했다.
이 학교는 성적통지표도 특이하다. A4용지 4장 분량의 통지표에는 과목별 교과평가, 학기 말 종합의견, 창의적 재량 활동, 특별활동 상황, 행동특성 및 종합의견이 깨알같이 적혀 있다.
국어 교과는 진단평가, 듣기, 말하기, 읽기, 쓰기, 국어지식, 문학, 학업성취도 평가, 독서인증 등 9개 영역별로 성취도가 표시된다. 수학은 진단평가, 수와 연산, 도형, 측정, 학업성취도 평가, 수학학력경시 등 6개 영역으로 나누어져 있다.
교사들은 수시로 학생들을 평가하고 그 결과를 기록해 둬야 한다. 교사들도 처음엔 일거리가 늘어 불만이 없지 않았지만 지금은 당연한 것으로 여긴다.
정 교사는 “처음엔 교사들이 힘들어했지만 점차 아이들을 위해 우리가 해야 할 일이란 생각을 하게 됐다”면서 “체계적으로 평가하니까 아이들의 성적이 눈에 띄게 달라져 가르치는 재미가 쏠쏠하다”고 말했다.
실제로 이 학교 학생의 올해 학업성취도는 지난해보다 많이 좋아졌다. 똑같은 시험지로 시험을 치른 결과 수학의 경우 평균 점수가 3학년은 77점에서 84.58점으로, 4학년은 72.46점에서 75.64점으로, 5학년은 82.98점에서 83.80점으로, 6학년은 83.63점에서 85.20점으로 올랐다. 이이영(51·여) 교감은 “교사가 조금만 노력하면 학교가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스스로 입증한 셈 아니냐”며 웃었다.
신수정 기자 crystal@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