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도쿄의 한 어린이 교육시설에서 육아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는 아버지들. 사진 제공 아사히신문
“남편이 다섯 살배기 딸아이에게 피아노와 일본무용, 영어를 배우게 하고 있습니다. 얼마 전에는 5만 엔(약 41만 원)이나 하는 어린이용 백과사전을 사와서 부부싸움을 하기도 했습니다.”
일본인 주부 A 씨가 도쿄세이토쿠(東京成德)대 교육상담센터에 털어놓은 고민이다.
최근 일본에서 ‘치맛바람’을 능가하는 ‘교육 파파(교육열이 높은 아버지라는 뜻)’ 열풍이 불고 있다.
11일 일본 언론에 따르면 초중고교생을 대상으로 한 학원설명회에 과거에는 보기 어렵던 정장 차림의 30∼50대 남성이 눈에 띄게 늘고 있다.
한 유명학원 대표는 “몇 년 전만 해도 학부모 모임을 하면 아버지는 100명 중 3, 4명꼴이었으나 요즘은 30% 정도다”고 말했다.
직장이 끝나기 무섭게 집으로 달려가 자녀들을 ‘과외지도’하는 것은 기본이고 부인이 전업주부인데도 휴가를 내서 자녀의 참관수업에 달려가는 아버지들도 생겨나고 있다.
이런 현상이 확산되자 남성 잡지들도 진학 정보와 육아 관련 기사로 지면을 도배하다시피하고 있다. 예컨대 요미우리신문이 발행하는 주간지 ‘요미우리 위클리’는 최근 4회 발행분 중 2회분의 표지 기사를 교육 특집으로 채웠다.
교육 파파를 겨냥한 잡지 창간도 잇따르고 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사는 지난해 10월 ‘닛케이 키즈(kids·어린이라는 뜻) 플러스’를 새로 만들었고, 비즈니스 정보 잡지인 프레지던트는 지난해 말부터 별책부록으로 ‘프레지던트 패밀리’를 발행하고 있다.
프레지던트 패밀리는 도쿄대 학생이나 명문중학교 학생들을 대대적으로 조사해 그 결과를 ‘머리 좋은 아이의 부모 얼굴’, ‘머리 좋은 아이의 생활습관’ 등의 기사로 소개해 왔다.
‘회사 인간’으로 알려진 일본 아버지들이 갑자기 자녀 교육에 열성을 쏟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성과주의 확산 등 직장 문화의 변화가 꼽힌다.
직장 안에서 가족적인 분위기가 급속히 사라지면서 생겨난 심리적 공백을 메우기 위해 자녀에게 관심을 쏟는 회사원이 늘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교육 파파 열풍이 아버지와 자녀들의 유대를 강화하는 긍정적인 결과로만 이어지지는 않고 있다. 6월 나라(奈良) 현에서는 종합병원 의사인 아버지의 지나치게 엄격한 학습지도 등으로 스트레스를 받은 고교 1년생이 집에 불을 질러 계모와 동생들을 숨지게 한 사건이 일어나기도 했다.
도쿄=천광암 특파원 ia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