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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충남]이 사람/‘열린 법원’ 실천 오세빈 대전고법원장

입력 | 2006-09-12 06:43:00


“법원이 사회의 외딴 섬이 되어서는 안 되지요.”

오세빈(56) 대전고법원장이 12일 대전고법 홈페이지에 ‘법원장과의 대화’ 코너를 마련한다. 시민이 법원에 대한 불만이나 주문 사항을 써 올리면 법원장이 직접 답변하는 것. 평소 ‘열린 법원’을 주장해 온 그는 대법원이 최근 전국 법원에 이 코너의 신설을 제안하자 곧바로 운영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법원이 먼저 시민에게 다가가야 합니다. 그래야 시민들로부터 판결이나 사법정책에 대한 내면적 동의를 얻을 수 있죠.”

그는 “정확한 판결과 정직하고 정의로운 법관이 사법부가 추구해야 할 목표지만 이제는 그것만으로는 부족한 시대”라며 “‘고객 감동’을 넘어 ‘고객 졸도’까지 서비스를 강화하고 있는 기업들을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동안 소극적으로 시행돼 오던 주민들의 법원견학 프로그램을 활성화하도록 지시한 것도 바로 그 때문.

그는 최근 법원이 도입한 구술변론도 이런 맥락에서 의미를 찾고 있다.

“구술변론은 법정에서 사건의 쟁점과 공방의 논리 등 모든 걸 내놓고 보여 주자는 거예요. 변론을 모두 서류로 대체하면 나중에 시민들이나 소송 당사자들이 불신을 가질 수 있지요”

오 법원장은 구술변론 과정에서 판사가 좋은 음성으로 알기 쉽고 설득력 있는 언어를 구사하는 것도 시민 서비스라고 보고 법관들에게 커뮤니케이션 능력을 높이도록 주문하기도 했다.

“30여 년 전 에피소드예요. 서울 서소문의 대법원은 차량 소음 등으로 소란했어요. 이 때문에 법관은 목소리가 커야 했어요. 목소리가 작으면 판결 후 소송 당사자들이 결과를 확인하려 법정 앞으로 우르르 몰려들곤 했죠. 그래서 판사도 음성테스트 등 면접을 강화해야 한다고 제안하기도 했어요.”

그는 또 “지금까지는 고등법원이 지방법원의 판결 전반을 다시 심리해 낭비가 많았다”며 “집중심리제 도입으로 지법 판결 가운데 중요한 쟁점만 깊이 있게 다뤄 80∼90%의 사건이 고법에서 결론이 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충남 홍성이 고향인 오 법원장은 대전고와 서울대 법대를 나와 1973년 사법시험에 합격한 뒤 대전지법과 대전고법에서 수석부장판사와 법원장을 모두 지내는 등 지역과 인연이 깊다.

강직과 청렴이 판사를 지탱하는 덕목이라는 그는 민주화 운동이 한창이던 시절 시위대학생에게 집행유예 판결을 많이 내렸다.

대북송금 사건, 삼성 SDS 신주 인수권부 사채 소송, 제일은행 주주 대표소송 등 굵직한 사건의 판결도 많이 맡았다.

작지만 기억에 남는 판결로는 2002년 마약을 투약한 박정희 전 대통령 아들 박지만 씨의 치료감호 청구를 기각한 것이 있다.

오 법원장은 “당시 박 씨가 죽어도 치료감호소에는 다시 들어가고 싶지 않다고 하더라”며 저명한 신경정신과 의사인 이시형 씨를 소개해 주고 치료받는 것을 전제로 석방했다고 전했다. 이는 박 씨가 가정을 이뤄 건실한 사업가로 일어설 수 있도록 배려한 것.

오 법원장은 “법원이 시민에게 한걸음 더 다가갈 수 있도록 인터넷 대화에 많이 참여해 달라”고 당부했다.

지명훈 기자 mhj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