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지기’ 김창근 할아버지가 거제시 둔덕면 어구리 어구교회 종을 울리고 있다. 병색이 엿보이는 얼굴이지만 종지기로서의 소명의식만큼은 철저하다. 사진 제공 어구교회 김필주 목사
'뎅~뎅~뎅~'
새벽 4시 반. 여명을 깨우는 교회 종소리가 새벽공기를 가르며 부드럽게 포구를 감싼다. 마을을 돌아나온 종소리는 이내 남해바다를 건너 갯내음을 타고 이순신의 섬 한산도까지 뻗어나간다. 한산도까지는 뱃길로 15분.
바닷가를 따라 70여호가 옹기종기 몰려있는 작은 포구 경남 거제시 둔덕면 어구리의 하루는 이렇게 시작된다. 그 새벽을 깨우는 주인공이 바로 '종지기 할아버지' 김창근(90·은퇴 집사)옹. 1967년 마을에 어구교회가 들어선 지 39년. 교회를 거쳐간 목사는 10명이 넘지만 종지기만큼은 늘 할아버지의 몫이었다.
여기서 문제 하나. 할아버지는 과연 몇 번의 종을 칠까요? 정답은 "할아버지가 50번이라고 생각하는 만큼"이다. 이전에는 매일 정확히 50차례씩 종을 쳤다. 하지만 할아버지의 귀가 어두워지면서 요즘은 70번, 100번을 치는 경우가 있다. 그렇다고 불평하는 주민은 없다. 270여명의 주민 중 교인은 30여명에 불과하다. 하지만 교회 종소리만큼은 이미 주민들의 일상이 되었다.
시계하나 변변히 없던 가난했던 시절. 보리 고개 넘기기도 힘겨웠던 주민들에게 새벽 종소리는 논밭일의 시작과 출어(出漁)를 알리는 하루의 출발선이었다.
할아버지는 몸이 좋지 않다. 2년 전 부인과 사별한 뒤 함께 살자는 자식들의 성화에도 불구하고 고향, 아니 종탑을 떠나지 않았다. 그는 몇 해 전 위절제수술을 받았고, 신장이 좋지 않아 아침이면 다리가 더욱 불편하다. 새벽 4시 전 잠을 깬 할아버지는 힘이 빠져나간 다리를 주물러 원기를 불러 모은 뒤 지팡이를 짚고 힘겹게 집을 나선다. 100여m 밖에 떨어져있지 않은 교회지만 할아버지의 지난했던 인생길만큼이나 멀게만 느껴진다. 빨간 벽돌로 지은 아담한 어구교회는 입구에 계단이 있다. 그 것이 종탑에 이르는 마지막 고비다. 겨울에는 몇 차례 넘어지기도 했다. 또 허리가 굽어 캄캄한 언덕길을 땅만 보고 걷다 주차된 차량이나 전봇대에 부딪히는 일도 다반사다.
그래도 할아버지는 절대 종지기직을 다른 사람한테 넘기지 않았다. "이제 그만 쉬시지요"라는 권유에도 "내가 살아봐야 얼마 더 살겠어? 기력이 있을 때까지 종을 칠거야"라고 손사래를 친다.
할아버지는 어구교회의 창립멤버다. 1967년 그 때 할아버지는 종 대신 산소통을 소나무에 매달아 두들겼다. 1999년 새 교회를 지었을 때 종을 철거하려했으나 할아버지가 자식들이 준 쌈짓돈 70만원을 내놔 오히려 종탑까지 세웠다.
요즘에는 종소리가 울리지 않는 날이 부쩍 많아졌다. 할아버지의 건강 때문이다. 종소리가 없는 날은 주민들이 할아버지를 걱정한다. 그날은 어구교회 김필주 목사가 할아버지 댁을 찾는 날이다.
할아버지가 치는 동그랗던 둥근 추는 지금 납작해져 있다. 오랜 세월의 마모로 닳아버린 종추에는 그의 신심(信心)과 소명의식이 녹아있다. "종치는 것? 나 개인의 욕심이 아니야. 종소리를 들으면서 마을 사람들이 예수님 믿고, 우리나라가 잘 살도록 기도하는 마음으로 종을 치는 거야."
할아버지가 그토록 사랑했던 종은 머지않아 할아버지와 함께 수명을 다 할 것이다. 그를 이을 '후계자'도 없다. 하지만 훗날 그가 혼신의 힘을 다해 두드렸던 종소리를 주민들은 '천국의 소리'로 기억할지 모른다.
윤영찬기자 yyc11@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