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일 홍콩에서 만난 앨 고어 전 미국 부통령은 배가 고파 보였다.
그는 기자와의 인터뷰 직전 어디선가 쿠키 하나를 가져와서 맛있게 먹었다. 자신이 출연한 환경 다큐멘터리 영화를 언론에 알리는 스케줄이 너무 빡빡해서 식사도 제대로 못 했다고 한다.
“인터뷰 도사가 됐을 테니 틀에 박힌 대답만 하겠구나” 하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그러나 이런 걱정은 곧 놀라움으로 변했다. 그는 어떤 정치적 수사(修辭)나 꾸밈없이 솔직하게 자신의 견해를 밝혔다. 그를 만난 기자들 사이에서 ‘신선한 충격’이라는 단어가 튀어나왔다.
환경운동가로 변신한 고어 전 부통령의 새로운 모습이었다. 그는 인터뷰 도중 지구온난화에 대한 수치가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자 노트북 컴퓨터의 자판을 두드려 가며 대답했다.
그는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2000년 미국 대선에서 패배한 뒤 정치무대에서 사라졌다. 좌절한 야인으로 돌아가거나 아니면 정반대로 다시 세력 규합에 나설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그는 1976년 하원의원 당선 이후 줄곧 관심을 가져온 환경문제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자신을 불러주는 곳이면 어디든지 찾아갔다. 강연 횟수만 1000여 회.
물론 그의 변신을 차기 대선 출마를 노린 장기 포석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그러나 미국의 주요 언론은 그의 환경운동을 정치적 야망으로 평가절하하지 않는다. 오히려 자기 신념에 따라 봉사의 길을 찾았다는 점에서 후한 점수를 주고 있다. 워싱턴포스트는 “그는 크게 패했지만 결과적으로 더 큰 지지를 얻는 데 성공했다”고 평가했다.
사실 워싱턴에서 잔뼈가 굵은 그가 향후 정치적 계산을 했다면 이렇게 언론을 상대로 민감한 정치 이슈를 피하지 않고 거침없이 말하기는 힘들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잊혀지는 것이 두렵지 않으냐”고 물었더니 그는 “나라를 위해 일하는 데는 여러 방식이 있다”고 답했다.
서울로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그가 말한 ‘공복(公僕·public servant)’이라는 단어가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한국의 정치인이나 지도급 인사 중에서 이렇게 ‘국가의 심부름꾼’이라는 의미에 충실하며 봉사의 길을 찾아서 다시 일어선 사람이 있는지 떠올려 봤다. 한 명도 생각나지 않았다.
정미경 국제부 micke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