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돌리자 라이스 미국 국무장관이 13일(현지 시간) 방미 중인 노무현 대통령을 만나 한미 관계의 미래상으로 ‘동맹의 현대화’를 제시했다. 이어 14일 열린 한미 정상회담에서도 두 정상은 ‘한미동맹의 현대화’에 공감을 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 관계자들은 일단 ‘동맹의 현대화’란 북한의 남침에 대비하는 냉전시대의 군사동맹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보고 있다. 동북아 지역의 정세변화에 따라 군사 경제 사회 문화 등 다방면에 걸친 관계 변화를 의미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미국의 외교정책에 정통한 외교관이나 학계의 국제정치 전문가들은 ‘동맹의 현대화’가 한미동맹의 틀 자체를 크게 바꿀 수 있는 의미를 담고 있는 것으로 분석한다.
특히 최근 전시작전통제권 환수 문제를 다루는 미국의 태도를 감안할 때 ‘동맹의 현대화’는 한미동맹의 근간을 흔드는 데까지 나갈 수도 있다는 것이다.
미국은 지난해 10월 제37차 한미연례안보협의회(SCM)에서 한국의 전시작전권 환수 요구에 신중론을 폈으나 올해 6월 제9차 한미 안보정책구상(SPI) 회의에서 갑작스레 ‘2010년 이전이라도 전시작전권을 이양할 수 있다’고 밝혔다. 2012년 환수를 추진해 온 한국 정부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김태효 성균관대 교수는 “미국이 전격적으로 전시작전권 이양 방침을 밝혔듯이 주한미군 감축도 한국의 반대에 크게 개의치 않고 진행할 수 있다”며 “미국은 ‘동맹의 현대화’를 내세워 한국의 안보 불안을 달래려 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또 동맹의 현대화가 진행되면 미국이 주한미군을 상시적으로 한반도에서 빼내 유동군으로 운용할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이는 사실상 철군을 의미하는 것이다.
한 중견 외교관은 “청와대에선 ‘미국이 한반도와 동북아 전략상 주한미군을 철수하지 못한다’고 판단하고 있지만 이는 오산”이라고 말했다. 미국 내에서 주한미군의 변환 가능성을 검토하던 차에 한국에서 ‘자주’의 목소리가 터져 나와 동맹의 현대화를 밀고 나갈 수 있게 됐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명건 기자 gun43@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