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로 놀아요”싱가포르의 공립학교 중 하나인 탄종카통 초등학교는 전교생 1000명의 국적이 30개를 헤아린다. 그래도 영어를 쓰기 때문에 아이들끼리 의사소통에는 어려움이 없다. 싱가포르=장원재 기자
싱가포르 탄종카통 초등학교 5학년인 중국계 아이런쿡 쯔윈(11) 양의 학급은 ‘작은 유엔’이다. 국제학교가 아닌 일반 공립학교지만 반 친구 중 타밀어를 쓰는 인도 출신이 2명, 힌두어를 쓰는 인도 친구가 10명, 말레이시아계 친구 4명, 중국계 친구가 23명이다.
아이런쿡 양의 가장 친한 친구는 타밀어를 쓰는 인도 출신의 비디아슈리 라쿠나탄(11) 양. 둘이 수다를 떠는 데 어려움은 없다. 영어로 대화하기 때문이다. “집에서도 텔레비전은 중국 방송을 보고, 책은 영어책을 읽으며 자랐어요. 부모님도 두 분끼리는 중국어를 쓰시지만 저나 동생(9)에게 얘기할 때는 영어와 중국어를 함께 쓰세요.”
이 학교의 추아체혹 부교장은 “싱가포르가 국제도시이다 보니 전교생 1000여 명의 국적이 30개국을 헤아린다”며 “영어가 기본 언어이지만 일주일에 6시간은 중국어 말레이어 타밀어 등 학생들 출신 국가에 맞춰 모국어 수업을 한다”고 말했다.
영국의 식민지배, 통상무역 중심의 도시국가라는 특성이 영어를 공용어로 쓰게 했지만 역으로 이제는 영어가 외국 학생들을 싱가포르로 불러들이는 동력이다. 싱가포르에서 30여 년간 어학원을 운영해 온 로즈예 원장은 “영어 교육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영어를 얼마나 쉽게 접할 수 있느냐 하는 환경”이라며 “국제화된 환경이야말로 매년 전 세계에서 5만여 명의 유학생이 싱가포르를 찾는 이유”라고 말했다.
○영어 라디오 방송이라도 시도
전문가들은 한국의 영어학습에서 가장 큰 걸림돌이 일상생활에서 영어를 쉽게 접할 수 없는 점이라고 지적한다.
초중등 과정의 공교육만으로도 국민 대부분이 영어를 잘하는 북유럽 나라들과 한국을 비교할 때 ‘영어를 접할 수 있는 환경’의 차이를 빼놓지 말아야 한다는 것.
북유럽 국가들은 대부분 영어로 제작된 TV 프로그램에 더빙을 하지 않고 자막 방송을 한다.
스웨덴 교육문화부 필리파 아르바스 올손 미디어팀장은 “북유럽 국가들은 공통적으로 더빙 대신 자막을 선호한다”며 “국민의 영어 실력 향상에도 도움이 되는 데다 더빙에 드는 비용을 줄일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올손 팀장에 따르면 스웨덴의 경우 공영방송 2개 채널의 4분의 1, 상업방송 2개 채널의 절반 이상이 영어로 방송된다. 스웨덴어와 영어의 방송 비율은 교육문화부와 국회가 제시한 가이드라인에 따라 방송사가 자율 결정한다.
서울대 영어교육학과 이병민 교수는 “지상파 영어방송을 만드는 데 예산이 많이 든다면 일단 상대적으로 비용이 덜 드는 영어 라디오 방송을 만드는 것이라도 고려해 볼 만하다”고 제안했다.
○유비쿼터스 영어환경 만들기 실험
최근 몇 년간 각 대학과 자치단체들은 앞 다퉈 영어를 언제 어디서나 접할 수 있는 유비쿼터스(ubiquitous) 환경을 만드는 일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영어마을은 그 대표 사례. 24시간 영어를 쓰는 경기영어마을 파주캠프에서 5박 6일 동안 생활했을 때 1인당 영어 체험시간은 약 60시간으로 초등학교 3학년 학생이 학교에서 2년간 듣는 수업시간 총량과 비슷하다.
대학들도 앞 다투어 영어 전용공간을 확충하고 있다.
연세대가 2002년 11월 국내 대학 최초로 학생회관에 ‘글로벌 라운지’를 만든 이후 중앙대 성균관대 영남대 한국외국어대 서강대 명지대 등이 비슷한 공간을 만들었다. ‘글로벌 라운지’는 책도 읽고 밥도 먹을 수 있는 자유공간이지만 영어를 사용해야 하는 것이 규칙.
한국과학기술원(KAIST)은 ‘비전 2005(Vision 2005)’를 통해 ‘2개 국어 공용화 캠퍼스’로 변모하고 있고 고려대 서창캠퍼스, 연세대 송도국제화복합단지 등도 ‘영어 공용 캠퍼스’ 도입을 추진하고 있다.
김광현 기자(팀장)
장원재 기자=세부 마닐라(필리핀)
싱가포르
조은아 기자=헬싱키 엘리메키(핀란드)
스톡홀름(스웨덴)
오슬로(노르웨이)
헤이그 아른험(네덜란드)
박형준 기자=후쿠오카(일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