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끊어진 北돈줄… 잊혀진 ‘9·19 성명’

입력 | 2006-09-18 02:56:00


■BDA은행 北계좌동결 1년

중국 베이징(北京)에서 4차 6자회담이 한창 진행 중이던 지난해 9월 15일. 미국 재무부는 연방 관보(官報)를 통해 마카오 소재의 방코델타아시아(BDA)은행을 북한의 돈세탁 창구로 지목했다.

이 과정은 누구의 주목도 받지 못했다. 북한은 4일 뒤 ‘9·19 베이징합의’라는 핵 포기 방안에 흔쾌히 서명할 정도로 금융 간접제재가 부를 파장을 인식하지 못했다. 그로부터 1년이 흘렀고, 미국은 대북한 ‘금융 옥죄기’의 강도를 한껏 높여 가고 있다.

▽한국의 중재 노력=미 재무부는 “북한 은행·기업과 거래하는 제3국의 은행과 기업은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파하고 있다. 북한은 “합법 자금과 비합법 자금을 구분하자. 합법 거래 자금은 풀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참여정부는 북한을 6자회담에 복귀시키기 위해 ‘부분적 불만 해소’가 필요하다고 판단하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은 13일 헨리 폴슨 미 재무장관을 만나 “미국의 대북제재가 6자회담 재개 노력에 방해가 안 됐으면 좋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영국의 금융자문회사가 인수한 대동신용은행의 나이절 코위 은행장은 5일 ‘미 당국에 은행 거래 정보를 제공하고 오해를 풀고 싶다’고 말했다. 평양 소재의 이 은행은 BDA은행에 동결된 북한 돈 2400만 달러 가운데 600만 달러의 주인이다.

▽미국이 파악한 북한자금=미국 정부는 지난해 2월 “리비아가 북한에 제공한 돈의 흐름을 파악했다”는 정보를 한국 정부에 알려왔다. 북한이 파키스탄 조직을 통해 6불화우라늄(UF6·우라늄광에 불소를 첨가해 기체 상태로 만든 핵물질)을 수출하고 받은 돈이라는 정보였다.

미국은 언제 어느 계좌를 통해 얼마가 이동했는지는 공개하지 않았다. 워싱턴의 한 소식통은 “자금 흐름은 미 재무부의 내부조직인 정보분석국(OIA)과 정보기관이 공조해 파악하고 있다”고 말했다.

스튜어트 레비 미 재무차관은 최근 “BDA은행의 자금이 대량살상무기(WMD)와 연관됐다는 것은 애초부터 확신했지만, 조사를 계속할수록 더 큰 게(불법 행위) 나왔다”고 공개 발언했다. 미국의 불법 자금 조사는 베트남 싱가포르 러시아의 은행까지 확대되고 있다. 미국 당국자가 ‘싱가포르의 O은행’이라고 구체적으로 거론할 정도다.

▽1년 평가=이와 비례해 북한이 받는 고통도 크다. 지난 1년간 북한의 은행계좌를 통한 정상 거래가 대폭 제한돼 왔다.코위 은행장은 6월 “현금 거래를 늘렸지만, 외국 기관들이 ‘위조 지폐’가 섞여 있을 수 있다는 의심을 하는 바람에 불편이 크다”고 호소한 바 있다.

라파엘 펄 미 의회조사국(CRS) 연구원은 “북한은 위조 달러 제작과 유통, 제3국 은행을 통한 돈세탁이라는 벌집을 건드렸고, 결국 미국의 ‘국제경제 체제에서 북한 밀어내기’ 압박전략이 효과를 보고 있다”고 평가했다.

워싱턴=김승련 특파원 srkim@donga.com

■9.19 공동성명 발표 1년

2005년 9월 중국 베이징에서 20일간 열린 제4차 북한 핵 관련 6자회담이 ‘9·19공동성명’이라는 성과물을 도출하자 당시 정동영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원장 겸 통일부 장관은 “한국 외교의 승리”라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정 전 장관은 “이제 북핵 문제가 해결의 길로 유턴했고 한반도 비핵화와 영구 평화 구축을 향한 거보(巨步)가 시작됐다”고 했으며 반기문 외교통상부 장관도 “지금 북핵 문제는 실질적인 해결 국면에 진입했다”고 맞장구쳤다.

9·19공동성명은 북한이 모든 핵무기와 현존하는 핵 프로그램 계획을 포기한다는 것을 전제로 미국이 대북 불가침 의사를 표명하고 궁극적인 관계정상화를 보장하는 내용. 북한이 핵을 포기하면 여타 5개국이 대북 에너지 지원과 경수로 제공도 약속했다.

하지만 1년이 지난 지금, 9·19공동성명은 사실상 완전히 퇴색했다. 북한은 7월 5일 보란 듯이 미사일을 발사했고 최근에는 핵실험 강행 움직임까지 보이고 있어 북핵 상황은 오히려 악화일로에 있다.

‘대북 경수로 제공’이라는 합의에 대한 해석을 둘러싸고 미국은 북한이 핵을 폐기해야 경수로를 지어줄 수 있다는 뜻이라는 입장이지만 북한은 경수로를 제공해야 핵 폐기가 가능하다며 팽팽히 맞서고 있다.

당시 회담 타개를 위해 ‘창조적 모호성(creative ambiguity)’이란 수식(修飾) 하에 합의 내용을 모호하게 처리한 데 따른 필연적인 결과라는 해석이 많다. 공동성명에 경수로 제공과 핵 폐기의 선후관계를 의도적으로 명시하지 않음으로써 우선 합의는 했지만 그것이 합의의 이행을 가로막는 요인이 되고 있다는 것.

미국의 대북 금융제재 논란도 9·19공동성명의 정상적인 이행을 어렵게 했다. 지난해 4차 6자회담이 진행 중이던 9월 15일 미 재무부는 마카오의 방코델타아시아(BDA)은행이 위조 달러를 유통시키며 마약 등 불법 국제거래 대금을 세탁한 혐의가 있다고 발표했으며 이후 북한계좌를 동결하기에 이르렀다. 이에 북한은 지난해 11월 5차 6자회담 직후 미국의 ‘금융제재’는 북-미 평화공존과 관계정상화를 뒤엎은 행위라고 주장하며 반발했다.

한국과 미국이 14일 정상회담에서 합의한 ‘공동의 포괄적 접근방안’은 이처럼 난관에 봉착한 9·19공동성명의 이행을 위한 또 하나의 시도라고 할 수 있다.

미국 북한에서는 미온적인 반응이 나오지만 최소한 한국 정부는 ‘포괄적 접근’이 북핵 문제의 해결책이 될 수 있다고 믿고 있으며 앞으로 이에 관한 관계국들의 각론 합의를 이끌어 내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한다는 방침이다.

정부 고위 당국자는 “6자회담 재개와 9·19공동성명 이행방안을 마련하기 위한 ‘포괄적 접근’에 대해 관련국들과 구체적인 방안을 조합 중”이라고 말했다.

하태원 기자 taewon_ha@donga.com

■“美 폴슨재무 실세장관 급부상”

대북 금융제재를 진두지휘하고 있는 헨리 폴슨(사진) 미국 재무장관이 조지 W 부시 행정부의 ‘실세 장관’으로 부상하고 있다고 미국 월스트리트저널이 15일 보도했다.

2개월 전 취임한 폴슨 장관은 싱가포르에서 열리고 있는 선진 7개국(G7) 재무장관 회담과 국제통화기금(IMF) 총회에서 북한의 불법 금융활동을 저지하기 위한 국제적 조치를 촉구하고 나섰다.

그는 국내적으로는 백악관과 긴밀하게 접촉하면서 유대를 강화하고 전문가들을 고위직에 임명하는 등 의욕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다. 그의 취임으로 부시 행정부 출범 이후 위상이 크게 약화됐던 재무부의 영향력이 복원되고 있다고 이 신문은 지적했다.

장관직 수락 조건으로 경제정책 수립의 주도적 역할을 보장받았던 그는 앨런 허버드 백악관 경제자문위원장과 매일 전화 협의를 하고 있으며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과도 수시로 접촉하고 있다. 그는 의회에도 정기적으로 경제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또 정책 장악력을 높이기 위해 자신이 회장으로 일했던 골드만삭스의 부회장 출신인 로버트 스틸 씨를 국내 금융정책담당 차관에 임명하는 등 재무부 내 주요 직책에 외부 전문가들을 잇달아 영입하는 중이다.

그는 골드만삭스 회장 당시 얻은 ‘일벌레’라는 명성에 걸맞게 매일 오전 8시 15분 간부회의를 정례화했으며 주말에도 직원들을 집으로 불러 현안을 점검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정미경 기자 mickey@donga.com